강원도 태백산 황지연못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경북 안동에서 반변천과 합류하면서 몸집을 키워 안동을 휘감고 돈다. 강물은 넓고 비옥한 들판과 병풍처럼 펼쳐진 병산, 하회마을 부용대 등 곳곳에 깎아지른 절벽의 빼어난 풍광을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볼거리,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그중 첫손가락은 풍천면 하회마을이다. 낙동강은 마을을 감싸며 ‘S’자형으로 흘러 하회(河回)라는 지명을 안겨 줬다. 풍산 류씨 집안이 600여 년을 이어오면서 조선시대 건축문화가 오늘까지도 원형 그대로 살아있는 곳으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999년 방문한 곳이며 20년이 지난 뒤 그 아들 앤드루 왕자가 찾은 곳이다.
마을 강 옆에 소나무 1만 그루로 이뤄진 만송정 숲이 울창하다. 서애 선생의 형인 겸암 류운룡 선생이 젊은 시절부터 조성한 비보림으로, 600여 년 시간의 흐름 속에 한결같이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숲 앞 낙동강 건너 기암절벽의 부용대가 절경이다.
이곳은 하회선유줄불놀이로 유명하다. 양반들의 뱃놀이인 ‘선유’와 강으로 별빛이 쏟아지는 듯한 ‘줄불’, 강물 위 ‘달걀불’에 ‘낙화’까지 감상할 수 있다. 놀이의 주연은 기와집에 사는 양반들이었고, 조연은 양반들을 섬기는 초가집 상민들이었다. 먼저 높이 70m가 넘는 부용대 정상에서 그 밑을 흐르는 화천(花川·화산에서 이름을 딴 낙동강의 별칭)과 백사장을 건너 만송정 소나무 숲까지 230m 줄 다섯 개를 걸고, 그 줄에 뽕나무 숯 및 소나무 껍질 숯의 가루와 쑥 심지를 창호지로 매듭지은 숯가루 봉지 수백 개를 매달아 불을 붙인다. 공중 여기저기에서 은은하게 터지는 작은 불꽃들이 강물 위로 비처럼 쏟아져 내리며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이어 달걀 껍데기 안에 들기름을 붓고 심지를 넣어 불을 붙인 뒤 작은 표주박에 담고 짚으로 만든 똬리에 얹어 강물에 띄우는 ‘달걀불’이 등장한다. 낙동강 강물 위를 유유히 흐르며 강물에 반사돼 아롱거리는 불빛이 은은하다. 그 속에서 배를 탄 양반들이 시 한 수를 지을 때마다 부용대 정상에서 소나무 가지를 묶은 ‘솟갑단’에 불을 붙여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는 ‘낙화’가 펼쳐진다.
조선 후기부터 전승된 선유줄불놀이는 일제강점기에 중단됐다가 1991년 복원돼 안동민속축제의 하나로 자리매김했고, 1997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계기로 본격적인 민속문화 사업으로 추진됐다.
선유줄불놀이와 함께 하회마을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12세기 고려 중엽부터 800년간 이어져 온 별신굿탈놀이다. 선유줄불놀이는 양반들의 축제였다면 별신굿탈놀이는 상민들의 놀이였다. 상민들이 양반들의 선유줄불놀이에 노동을 한 대가로 양반들은 별신굿탈놀이에 경비를 댄 것이다.
별신굿탈놀이는 특별한 가면극이다. 이를 통해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했고, 별신굿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왔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1997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로 승화됐다.
이곳에서 낙동강 상류로 멀지 않은 풍천면 병산리에 조선 중기의 병산서원이 자리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중 하나이다. 서원 앞으로는 아름다운 낙동강이 흐르고 병풍을 둘러친 듯한 병산이 펼쳐져 있다. 여름철 아름다운 배롱나무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낙동강 물길의 안동 지역 가장 상류인 도산면 단천리에 가면 ‘예던길’이 있다. 단천교에서 미천장담(彌川長潭)과 농암종택을 지나 고산정까지 이어진다. 퇴계 이황 선생이 15세 되던 1515년 숙부 이우 선생을 따라 청량산에 들어가면서 처음 알게 된 뒤 여러 번 오가며 걸어 ‘퇴계오솔길’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단천교 앞에 ‘녀던길’이라고 새겨진 안내석이 있다. ‘녀던길’은 옛 성현이 가던 길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강 왼편으로 물길을 거슬러 포장도로를 따라 약 1.5㎞ 가면 도로는 끝이 나고 전망대가 반긴다. 정면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그 뒤로 청량산이 우뚝하다. 그 청량산 자락 가송리에 농암종택과 고산정이 자리한다.
농암종택은 조선 중종 때 문신 농암 이현보 선생이 나고 자란 집이다. 영천 이씨 안동입향조이자 농암 선생의 고조부인 이헌이 처음 지었다. 도산서원 아래 안동댐 수몰 지역에 있던 정자를 후손들이 농암 선생을 기리는 분강서원과 함께 옮겼다.
고산정은 조선 전기 문신 금난수가 지은 정자다. 강 바로 옆 수직 단애 아래 자리 잡았다. 2018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찾는 이가 많아졌다.
여행메모
9월 28일 오후 7시 하회선유줄불놀이
간고등어·찜닭·식혜·국시… 안동의 맛
9월 28일 오후 7시 하회선유줄불놀이
간고등어·찜닭·식혜·국시… 안동의 맛
올해 하회선유줄불놀이는 5월부터 11월까지 매월 한 차례 첫째 주 토요일에 개최된다. 다만 지난 5월에는 어린이날인 일요일에 진행됐고, 9월에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기간(9월 27일~10월 6일)에 맞춰 28일에 열린다. 행사는 오후 7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진행된다.
선유줄불놀이를 보려면 당일 오후 7시까지 하회마을 매표소에서 관람권을 구매해야 한다. 또 하회마을 일대 교통량 밀집으로 인한 불편을 줄이기 위해 하회마을 내 차량 진입을 통제하고 순환버스로 관람객을 수송한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맞춰 '하늘을 담아내어, 섬세한 빛깔의 갓-GAT' 전시가 5일부터 10월 13일까지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상설갤러리, 5갤러리에서 개최된다. 관람은 무료이며 예약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가능하다.
안동에는 지명을 붙인 먹거리가 제법 많다. 안동간고등어, 안동찜닭, 안동식혜, 안동문어, 안동갈비, 안동국시(국수) 등이 대표적이다.
특산품으로는 안동포가 이색적이다. 안동에서 생산된 대마포(大麻布)로, 조선시대 궁중 진상품에 포함될 정도로 귀한 옷감이었다. 아직도 안동포를 짜고 있는 임하면 금소리에 안동포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안동=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