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유럽노선에 몰린 선박… “동남아 갈 컨테이너선 구해요”

입력 2024-09-04 02:31
게티이미지뱅크

동남아시아 지역에 플라스틱 제품을 수출하는 A사는 최근 베트남·말레이시아로의 해상운송 일정을 잡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보통 일주일 전에 실어 보낼 화물량과 선박을 확정하는데 최근에는 동남아 노선을 운항하는 배 자체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2주 전에 예약을 걸어도 선복(선박 내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공간)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선적 지연으로 적기 납품이 어려워진 A사는 동남아 바이어에게 신뢰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중소 수출기업들이 동남아·서남아시아향 수출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과 유럽으로 가는 컨테이너선을 구하지 못해 물류난을 겪었던 상황이 개선되면서 그 불똥이 동남아 지역으로 튀었다. 운임이 급등한 미주·유럽 노선의 수익성이 좋다 보니 베트남·인도 등으로 갈 배까지 해당 노선에 투입되면서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6월부터 운영 중인 ‘수출입 물류 애로 신고센터’에는 처음 한 달간(7월 13일 기준) 63개사의 신고가 몰렸다. 대부분 미국·유럽으로 가는 컨테이너선이 부족하다는 민원이었다. 당시 유럽 노선은 홍해 사태 장기화로 선박들이 희망봉을 우회해야 하는 상황을 맞으면서 운임이 급등했고, 미주 노선에서는 파나마 운하 가뭄에 미국의 대중국 관세 부과를 염두에 둔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까지 더해지면서 컨테이너선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하지만 ‘시간’이 이를 해결해줬다. 글로벌 선사들이 이익이 더 많이 남는 미주·유럽 노선에 새로 만든 선박을 지속해서 투입했다.


문제는 미주·유럽 노선이 선박들을 빨아들이면서 동남아와 인도로 갈 컨테이너선은 부족해졌고 이 지역의 운임 상승으로 이어졌다. 3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부산항을 기준으로 도출하는 동남아향 컨테이너선 운임지수는 지난 1월 8일 318에서 지난 2일 1438로 352% 급등했다. 같은 기간 미국 동부 노선은 147%, 미국 서부 노선은 155%, 유럽 노선은 100% 오른 것에 비하면 가파른 상승세다.

이 때문에 동남아·서남아 지역으로 수출하는 중소기업의 고충은 커졌다. 자동차 부품 업체 B사는 인도 첸나이(남동부) 노선 선복 확보가 어려워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B사 관계자는 “아시아 노선 선박을 미주와 유럽향 노선에 투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무협은 물류기업 LX판토스와 고려해운, 남성해운 등 7개 국적 선사와 함께 동남아·서남아 노선을 대상으로 하는 신규 해상운송 지원 사업을 마련했다. 베트남·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 등 5개국 8개 노선에 매주 약 3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의 전용 선복을 시장가 대비 저렴한 운임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오는 6일까지 신청을 받는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내 화주들이 어려울 때 물량을 처리해줘야 나중에 해운사에 리스크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