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일군 문화와 사회적 가치는 선호하지만 복음은 거부한다.’ 자신을 ‘문화적 기독교인’으로 일컬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밝힌 입장이다. 최근 서구 지성계에는 도킨스처럼 ‘기독교는 사실에 기반을 둔 종교가 아니지만 사회엔 이롭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영미권 작가 앤디 배니스터는 최근 미국 복음연합(TGC)에 이 같은 추세를 분석하면서 이런 이들과의 대화 방법을 기고했다.
배니스터는 “이제는 자신을 ‘기독교 무신론자’로 칭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영국의 유명 언론인이자 작가인 더글러스 머레이가 대표적”이라며 “그는 기독교가 인권, 표현의 자유 등 서구 문명이 형성한 기본적 가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기독교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했다. 소말리아 출신 미국 작가 아얀 히르시 알리 역시 이슬람교에서 무신론자로 돌아섰다. 그는 지난해 공개적으로 기독교를 옹호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서양 문화의 근원에 기독교가 있다는 것이었다.
배니스터는 이에 대해 코로나19와 금융·기후 위기가 세계인의 일상을 뒤흔들면서 신무신론에 공허함을 느낀 이들이 ‘기독교 무신론’을 지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희망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등 인생을 향한 기본적 질문에 신무신론이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런 상황이 기독교에 기회이자 과제를 던진다고 봤다. 특히 기독교가 삶과 사회에 ‘좋은 조언’을 주는 존재로 그쳐선 안 된다고 했다. 배니스터는 “기독교에서 발흥한 사회적 가치가 결국 복음의 진리에서 나온다는 걸 알려야 한다”며 기독교 무신론자와의 대화를 조언했다.
첫째는 이들 논리의 ‘역설을 지적하는 것’이다. 배니스터는 “기독교 무신론이든 뭐든 자기가 좋아하는 가치관을 믿을 자유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신앙이 제거되면 그 의미가 사라진다”며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 등 인권에 대한 주요 개념은 창세기 1장 내용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둘째는 ‘진실 없이 혜택도 없다’는 전제다. 기독교의 공공선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다.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한 신, 피조물을 위해 죽은 신 존재가 있기에 인간은 평등과 자유, 존엄성과 사랑을 논할 수 있다.
마지막은 ‘묻고 기도하는’ 자세다. 그는 기독교 무신론을 지지하는 이들과 대화하며 이들 생각의 접근법을 칭찬하라고 권한다. 이어 “그렇게 생각하게 된 근원에 대해 궁금한지, 혹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근거인 기독교가 사실이 아니라면 그 가치도 의미가 있는지를 물어보라”고 제안했다.
배니스터는 “기독교 역사에는 기독교 무신론자와 같은 이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대표적인 예가 무신론자였던 C S 루이스”라며 “루이스 역시 기독교에 대한 긍정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은 그 핵심인 예수를 만났다. 비슷한 여정을 가는 이들을 격려하고 기도하자”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