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철학회(한기철)는 1998년 4월 서강대에서 회원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됐다. 나와 손봉호(서울대) 김성진(한림대) 강영안(서강대) 교수 등이 주축이 됐다. 우리 세대가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할 땐 신앙적 사유를 전혀 배제하고 철학을 배웠다. 일반 대학 철학과에 종교철학이 있긴 했으나 해당 시간은 인도철학이나 불교철학에 자리를 내주곤 했다.
하지만 한기철이 창립하면서 일반 철학의 영역에서도 신앙적 진리를 담은 주장을 펼 수 있는 사유적 공간이 마련됐다. 한기철에서는 철학 인공지능 윤리 경제 등 다양한 주제를 기독교적 관점으로 연구해 발표했다. 복음주의적 신앙을 가진 학자가 모인 경건한 분위기 또한 한기철의 특징이다. 항상 시작과 끝을 기도로 마친다. 토론 내용과 분위기도 신학회에서 하는 것처럼 경건했다. 정통 기독교 신앙에 가깝고 친숙한 모임임을 느낄 수 있는 학회였다.
나는 2006년부터 2012년까지 6년을 회장으로 봉사했다. 역대 회장으로는 손봉호 김성진 강영안 신상형 강학순 박창균 이경직 양성만 최태연 교수가 수고했다. 현재는 김종걸 교수(침신대)가 봉사하고 있다. 정기철 신응철 최한빈 교수도 이사로 섬기고 있다. 최태연 김종걸 정기철 교수는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 전공자로서 기도하는 학자들이다.
학회에서는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타자철학’이 에드문트 후설이나 마르틴 하이데거의 자아중심적 철학에 대한 대안으로 논의됐다. 내 관점에선 기독교 철학은 좁은 의미에서 기독교 관점의 인식론이다. 넓은 의미에서 기독교 세계관학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독교 철학은 로고스(이성)의 원천을 추구하기에 궁극적으로는 궁극학으로 나아간다고 본다.
학회 출판물로는 2005년 회원학자들이 공저한 ‘하나님을 사랑한 철학자 9인’(IVP)이 있다. 한기철은 한국철학회 내 한 분과로 참여하고 있다. 일반 철학을 수용하고 그 지식의 기초 위에서 성경적이고 신앙적 지식과 사유를 추구한다. 한국 철학의 태두(泰斗)라 불리는 박종홍 전 서울대 교수는 말년에 기독교 신앙으로 귀의해 강신명 새문안교회 목사에 세례를 받은 뒤 별세했다. 김태길 전 서울대 교수 역시 말년에 기독교 신앙에 귀의했다. 중세철학을 강의한 김규영 전 서강대 교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내가 은사로 모신 조가경 전 서울대 교수도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분이었다.
진정한 철학은 ‘무전제 사유’나 ‘무신론’에 그치지 않는다. 무신론은 허무주의로 끝나고 만다. 범신론은 ‘모든 것이 신’이라고 보기에 결국은 운명에 내맡기게 된다. 진정한 철학은 모든 것의 의미를 인정하는 근거인 ‘인격적인 창조자’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현재 104세로 건강하게 공적 활동을 하고 있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기독교 사상 전도사’라고 할 정도로 교회에서 신앙 강좌를 하며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 은총에 대해 역설하는 1세대 기독교 철학자다. 김형석 교수는 기독교를 “축복의 종교”로 정의하며 기복을 추구하는 재래 종교와 차별화한다.
학술지 ‘기독교철학’은 연 2회 발간한다. 최근엔 학진 등재후보지가 됐다. 신앙을 가진 젊은 학자가 학문적으로 신앙적 진리를 펴나갈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는 의미다. 이 배후에는 기도하며 세속 사상과 성별 되고자 했던 한국교회가 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