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얕보다 뒷목잡는 3040… 젊은 뇌출혈, 후유장애 크다

입력 2024-09-03 04:11
어릴 때 시작된 비만·고지혈증 등이
성인까지 연결… 3040 뇌출혈 증가

상당수가 뇌 깊은 곳에서 발생
회복돼도 심각한 장애 겪는 사례↑

뇌 미세혈관, 고혈압에 매우 취약
젊을 때부터 혈압·체중 조절 중요

최근 연구에서 30·40대의 뇌출혈 발생 위험 요인으로 비만과 고혈압, 음주, 흡연, 고중성지방혈증 등이 꼽혔다. 전문가들은 젊을 때부터 혈압 및 체중 관리, 금연·절주 등에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게티이미지뱅크

33세 남성 A씨는 집에서 갑자기 오른쪽 신체 마비와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을 느껴 급히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 뇌 깊숙이 있는 뇌간에 5㏄ 정도의 출혈이 관찰됐다. 응급조치로 편마비 증상은 많이 좋아졌지만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게 됐다. A씨는 뇌출혈 발병 전에 고혈압과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젊다는 생각에 약을 먹지 않는 등 관리에 소홀했다. 게다가 하루 한 갑씩 담배를 7~8년간 피웠고 술도 주 2~3회 마셨다. 의료진은 특히 고혈압 관리 실패가 젊은 A씨의 뇌출혈 발생에 방아쇠가 됐다고 보고 있다.

B씨(37) 역시 비슷한 이유로 뇌출혈을 경험했다. 이후 B씨는 집 밖에 나가면 찾아오지 못할 정도로 신체·인지 기능이 떨어졌다. 주치의는 “딸 둘을 둔 가장인데, 뇌출혈 후유장애로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고 아이들과 남편을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뇌출혈은 급작스레 찾아오고 일단 발병하면 회복돼도 큰 장애를 남길 수 있다. 국내에선 매년 10만명 당 24.6명이 뇌의 안쪽에 가느다란 혈관이 터지는 ‘뇌내출혈(ICH)’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 된다. 전체 뇌졸중의 10~20%를 차지한다. 젊은 사람의 뇌출혈 발병률은 상대적으로 낮아서 45세 미만의 경우 10만명 당 1.9명 정도 겪는다. 일반적으로 뇌졸중은 60세 이상에서 주로 발생한다.

그런데 근래 30·40대에서도 뇌출혈 발생이 점차 늘고 있다. 생활방식의 변화로 소아·청소년기부터 비만, 고지혈증, 고혈압 등을 갖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 영향이 성인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연구를 통해 고혈압과 비만, 음주, 흡연, 고중성지방혈증, 뇌소혈관질환(cSVD) 등이 젊은 층 뇌출혈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더구나 30·40대 환자 10명 중 7명은 뇌 깊은 곳에서 출혈이 발생하고 그럴 경우 대부분 반신마비, 실어증, 치매, 정신병 등 후유장애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젊은 나이에 뇌출혈을 겪으면 장애 상태로 30~40년을 살면서 환자 본인은 물론 병간호를 책임지는 가족에게도 큰 고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박용숙 교수와 서울의대 장주성 교수팀은 2011~2021년 뇌출혈로 입원·치료받은 30~49세 139명을 연구해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 연구 결과는 대한뇌혈관외과학회지(JCEN) 최신호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연구 대상 중 뇌동맥류, 뇌종양, 동정맥기형, 해면상혈관종 등 기저 뇌 질환들을 제외하고 ‘자발성 뇌출혈’로 입원한 73명을 최종 분석했다. 연구팀은 “뇌종양이나 동정맥 기형 등은 개인이 노력한다고 안 생기는 병이 아니고 발생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자발성 뇌출혈은 개인 노력으로 충분히 예방하거나 발병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 논문에 따르면 73명 중 남성이 대다수(83.6%)를 차지했다. 또 비만에 해당하는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25㎏/㎡ 초과가 45.8%, 현재 흡연 47.2%, 고혈압 진단 41.1%, 과도한 알코올 섭취(월 15일 이상 음주) 30.6%, 고중성지방혈증(150㎎/㎗ 초과)인 경우가 33.3%였다.


젊은 뇌출혈 환자의 상당수가 출혈이 뇌 깊은 곳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가 고여 형성된 혈종의 74%가 시상 및 기저핵(55%) 뇌간(11%) 소뇌(8%)에 집중됐다. 박용숙 교수는 2일 “뇌 깊은 곳은 뇌간처럼 대뇌 피질 정보가 모여서 내려가는 신경로가 밀집돼 있거나 기저핵, 시상 소뇌처럼 대뇌와 운동·감각 기능을 서로 조율하는 기능을 한다”며 “대뇌는 상대적으로 양옆, 앞뒤로 넓게 위치하고 깊은 뇌는 이 영역과 조율 기능을 작은 곳에 집약해 갖고 있어서 이 부분의 세포가 손상되면 대뇌의 넓은 영역 손상과 맞먹는 신경 결손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 분석 대상 뇌출혈 환자의 60%가 사망(19%), 식물인간(19%), 심각한 장애(14%), 거동 가능한 장애(19%) 등 대체로 나쁜 결과를 보였다.

또 뇌MRI 영상 분석이 가능했던 39명 가운데 51.3%에서 뇌내미세출혈과 뇌백질 변성이 관찰됐다. 이는 뇌출혈 발생 전에 이미 뇌 변성이 시작된 것을 의미하는데, 고혈압과 관련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 교수는 “뇌의 미세혈관은 고혈압에 매우 취약하다. 일정 기간 고혈압에 노출되면서 혈관 끝이 막히거나 미세하게 터지거나 혈관벽이 압력을 방어하느라 딱딱해지는 형태로 변성되는 거로 추정된다”고 했다. 특히 고등학생이나 입대 전 신체검사 때 혈압이 높다고 들었던 사람들은 뇌출혈 위험 그룹으로, 이때부터 혈압과 몸무게를 조절해야 한다는 게 박 교수의 조언이다.

박 교수는 “최근 젊은 남성에게서 과체중과 비만, 고혈압, 고지혈증이 늘고 있는데 건강을 자신하고 안일한 마음을 갖거나 고혈압약을 한 번 먹으면 평생 복용해야 하니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릇된 상식으로 관리에 소홀한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뇌출혈의 주요 위험 요인은 대부분 예방·관리할 수 있으므로 경각심을 갖고, 젊을 때부터 혈압 및 체중 조절, 금연 등을 통해 자신과 가정에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상황이 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