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합성 니코틴 채찍 들자 ‘유사 니코틴’ 등장… 풍선효과

입력 2024-09-03 04:30
담배의 핵심 성분인 니코틴 제조 기술은 담뱃잎 추출→줄기·뿌리 추출→합성 단계로 발전해 왔으며 최근 니코틴과 화학구조가 흡사한 유사 니코틴이 개발됐다. 한국담배규제교육연구센터

‘무니코틴’ 대대적 표방하지만
실제 니코틴과 비슷한 독성·중독성
경고 문구·그림 등 규제 사각지대

한국에도 중국산 등 이미 진출
이메일·방문 판매 등 은밀한 거래
정부 규제 방침 정하자 ‘갈아타기’
올 8개월 만에 3배 이상 판매 증가

식약처 애매한 입장 변화가 화 키워
실태조사·철저한 관리 감독 목소리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1급 발암물질인 담배는 규제와 세금을 피하는 방법을 찾아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핵심 성분인 니코틴은 담배의 잎, 줄기·뿌리 추출에 이어 화학물질로 합성하는 단계로까지 기술이 발전했다. 합성 니코틴 제품이 국내 액상 전자담배 시장의 90% 이상을 선점한 상황이다. 이 제품들은 담배사업법상 담배에 해당하지 않아 경고 문구·그림 등 각종 규제와 과세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최근 합성 니코틴에 대한 규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도 규제 강화로 방향을 틀면서 ‘풍선 효과’로 ‘유사 니코틴’ 제품이 등장해 새로운 규제 사각지대가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광범위하게 팔리고 있는 ‘무(無)니코틴’ 표방 액상 제품들에 실제로는 유사 니코틴 성분이 들어있음이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관리·감독과 규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사 니코틴은 니코틴과 흡사한 화학구조를 가진 합성 물질로, 흡연 시 니코틴처럼 소위 ‘담배 맛(타격감)’을 내도록 해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니코틴 유사체가 천연 니코틴보다 심신에 미치는 영향이 강하고 중독성이 높을 수 있다고 보고 위해성 검토를 진행 중이다. WHO도 니코틴에만 맞춘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담배업계가 니코틴이 아닌, 담배 알칼로이드(니코틴 등 가지과 식물에 함유된 성분) 또는 니코틴 유사체를 개발·적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신종 ‘유사 니코틴’의 출현

2일 국가금연지원센터와 전자담배업계에 따르면 국내 유통 중인 액상 전자담배에는 합성 니코틴과 함께 니코틴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홍보되는 무니코틴 액상이 사용되고 있다. 둘 다 규제와 과세 감시망 밖에 있어 온라인상 청소년 대리 구매, 소매인 지정 허가 없이 성인 인증도 제대로 되지 않는 무인자판기 판매, 마약 사건 등을 통해 일반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다. 담배업계는 합성 니코틴 제품이 연초 니코틴 제품보다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 분석에 의하면 유해 성분이 연초 니코틴보다 더 많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국제특성분석연구소 고문인 신호상 전 공주대 교수는 지난 6월 대한금연학회 발표에서 “R+S-합성 니코틴에는 불순물인 R-니코틴 성분이 50% 함유돼 있으며 합성 과정에 쓰이는 유해 유기용매의 잔류량이 높을 수 있고 환경 호르몬(프탈레이트·비스페놀)의 오염 가능성이 있다. 또 담배업계 주장과 달리, 1군 발암물질(NNN, NNK)의 전구체가 들어 있어 발암 물질이 미량 생성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 FDA는 2022년부터 합성 니코틴 등 연초를 사용하지 않은 모든 니코틴 제품을 담배로 규제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한국의 기획재정부도 그간의 태도를 바꿔 합성 니코틴을 담배의 범주에 포함하도록 보건복지부와 정책 협의를 진행 중이다.

문제는 새로 출현한 ‘유사 니코틴’ 제품이다. 미국에선 지난해 10월부터 모 업체가 ‘6-메틸 니코틴(메타틴)’이라는 새로운 화학성분의 전자담배 액상을 제조해 팔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어떤 공급원의 니코틴도 포함하지 않아 ‘PMTA(미국 담배제품 사전 검열제도)’ 면제”라고 홍보하고 있다. 합성 니코틴 규제에서도 벗어난 신종이다.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니코틴 유사체 ‘메타틴’을 홍보하는 기업 홈페이지. 웹페이지 캡처

업계 “100% 유사 니코틴으로 갈아타”

한국에도 유사 니코틴 제품이 이미 상륙한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초 중국의 제약업체가 개발한 니코틴 대체 물질이 국내 유통업체를 통해 식품첨가물의 가향 물질로 수입됐다”며 “주로 이메일, 방문 마케팅을 통해 액상 전자담배 판매자들에게 은밀히 영업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들은 해당 물질이 니코틴 대비 3분의 1 양으로 니코틴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으며 니코틴이 아니므로 담배 관련법과 세금 등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홍보한다”고 부연했다.

특히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서 ‘무니코틴’으로 판촉되는 액상들에도 중국산 니코틴 유사 물질이 함유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방송사가 3개 회사 6개 무니코틴 제품을 국제특성분석연구소에 성분 분석을 의뢰한 결과 모든 제품에서 메타틴이 일정 농도씩 검출됐다. 한 개 제품에선 ‘없다던’ 니코틴도 나왔다. 무니코틴 홍보 자체가 거짓이었던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무니코틴 표방 액상에는 100% 유사 니코틴이 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고 귀띔했다. 정부가 합성 니코틴을 규제하겠다고 나서자 대부분 업체가 유사 니코틴 제품 판매로 갈아타고 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실제 네이버 온라인쇼핑에서 검색되는 무니코틴 표방 제품 판매 게시글은 10만9000여건(8월 27일 기준)으로 올해 1월(3만여건)에 비해 3배 넘게 증가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처럼 무니코틴 제품의 급증과 방치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일관성 없는 행정 탓이 크다고 보고 있다. 2016년 식약처는 ‘흡연습관개선제’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하면서 무니코틴 액상을 포함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파동 이후 에어로졸 형태로 흡입할 수 있는 액상 전자담배의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로 인해 무니코틴 제품은 한때 시장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유사 니코틴 제품을 취급하는 일부 업체가 재차 문의하자 식약처는 “품목별로 성분, 함량, 형상, 표시된 사용 목적 등을 종합 검토한 뒤 판단할 수 있다”고 모호한 유권해석을 내놨다. 이에 업계는 식약처가 기존 태도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판단하고 온라인을 중심으로 팔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성분 분석을 통해 무니코틴 표방 제품에서 유사 니코틴 함유 사실이 새롭게 확인된 만큼, 정부 차원의 실태 조사와 유해성 분석, 관리·감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진짜 무니코틴 제품은 식약처가 흡연습관개선제로 관리하고 유사 니코틴 제품은 담배로 규제되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도 “호흡기로 흡입되는 화학물질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는 가습기살균제 사태로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보건 당국의 선제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FDA는 유사 니코틴이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자료 검토에 들어갔다. FDA는 지난 5월 언론에 “비록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일부 새로 나온 자료들은 니코틴 유사체가 천연 니코틴보다 강력해 청소년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주의력, 학습, 기억에 장기적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신호상 전 교수도 “담배 규제를 피하고자 개발된 니코틴 유사체는 니코틴과 같이 중독성이 있으나 독성에 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으므로 더 퍼지기 전에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