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미혼모 위한 보금자리… 생명의 소중함 되새긴다

입력 2024-09-03 03:05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구 바인센터에서 만난 김한나 원장. 김 원장은 “미혼모와 아이들이 센터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을 볼 때마다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김미소(가명·22)씨가 바인센터를 찾은 것은 출산을 앞둔 2021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당시 김씨의 나이는 열아홉 살. 정신질환이 있는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방황을 하다가 아이를 임신했다.

김씨는 눈앞의 현실이 막막하기만 했다. 출산도, 산후조리도, 육아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바인센터에 입소한 뒤 아기를 낳았고 그 아이를 기르면서 1년 남짓 이곳에서 살았다. 바인센터 관계자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듬해엔 대학에도 진학했다.

현재 김씨는 대학 3학년이다. 지금도 가끔 김씨는 바인센터 관계자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만나기도 하고 아기 돌잔치 때도 바인센터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만약 김씨가 바인센터를 찾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은 어떻게 됐을까. 대학 진학은 물론이고 ‘엄마의 삶’을 사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바인센터는 어쩌면 무너진 그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 시설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미혼모를 위한 보금자리, 바인센터
각종 가구와 전자제품이 마련돼 있는 공실(空室) 상태의 원룸. 신석현 포토그래퍼

바인센터는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가 내놓은 재정을 바탕으로 2018년 10월 만들어진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이다. 시설명은 포도나무를 뜻하는 ‘바인(Vine)’에서 가져왔다.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즉 바인센터라는 시설명엔 미혼모들이 이곳에서 희망의 열매를 찾길 바라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의 마음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바인센터는 예기치 않은 임신, 준비되지 않은 출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입소 대상은 법령(청소년기본법)에서 청소년으로 규정한 24세 이하 미혼모 가운데 3세 이하 아이를 둔 여성, 혹은 미혼 임산부이며 입소 기간은 최대 2년이다.

지난달 26일 바인센터에서 만난 김한나 원장은 “바인센터는 청소년 미혼모를 위한 전국 유일의 특화 시설”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바인센터의 운영 시스템을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예컨대 바인센터엔 간호사가 상주하면서 입소자와 아기들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모니터링한다. 조리사는 삼시 세끼 따뜻한 음식을 제공한다. 출산 직후엔 외부 산후 조리원에 입소할 수 있게끔 비용을 지원하고 미혼모를 위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나 심리 검사도 진행한다. 김 원장은 “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리 시설을 알게 돼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수도권에 사는 이들이 많이 찾지만 입소자 중엔 지방에서 상경한 이도 많다”고 전했다.

“바인센터는 미혼모들에게 자립의 토대를 제공하는 장소예요. 이곳에서 엄마도, 아이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좀 더 나은 식사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정부나 사회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합니다.”

아기를 섬기는 일은 크리스천의 소임
10대 미혼모와 지난 5월 태어난 아기가 함께 살고 있는 공간. 신석현 포토그래퍼

바인센터에 따르면 그동안 이곳에 머물렀던 엄마와 아이는 총 70명에 달한다. 이들은 바인센터에서 아기를 키우다가 다른 시설로 옮겨가거나 본가로 돌아가곤 했다.

바인센터가 있는 곳은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8층짜리 빌딩으로 센터는 이 건물의 4~8층을 사용하고 있다. 4층과 5층엔 사무실이, 6층과 7층에는 미혼모가 아기와 머물 수 있는 원룸이나 투룸이 마련돼 있다. 8층은 식당으로 사용 중이다.

이날 둘러본 바인센터엔 두 가구가 입소해 있었는데 그중 한 투룸 공간은 올해 열일곱 살인 미혼모가 아기와 함께 쓰고 있었다. 방문 당시 엄마는 외출 중이었고 아기는 방에서 ‘돌보미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단출하지만 깨끗한 공간이었는데 현재 공실(空室)인 다른 공간들도 마찬가지였다. 냉장고 세탁기 싱크대 침대….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바인센터 직원은 총 8명으로 간호사 조리사 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소수정예 인력이었다.

바인센터 같은 시설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많은 미혼모가 낙태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22년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만 15∼44세 여성의 인공임신중절 추정 건수는 3만2063건에 달했다. 바인센터는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만드는 시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셈이다.

바인센터 설립을 주도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지금도 이 시설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최근 한부모가족을 위해 유모차 120대를 전국의 관련 복지시설에 선물했는데 바인센터도 그중 하나였다. 서울 성광교회(한규철 목사) 성도이기도 한 김 원장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만들고 성장하게끔 돕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바인센터에 근무하면서 크리스천으로서 큰 기쁨을 느끼곤 합니다. 입소자들에게 종종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지원한 것들이 무엇인지 말해주곤 해요. 교회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