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빛 ‘피아노’(원하늘·22·피아노학과)
내 꿈은 원래 배우였다. 그 출발점은 성극이었다. 유년 시절을 교회에서 보낸 이들에게서 자주 등장하는 서사다. 연기를 배우러 무작정 아마추어 극단을 찾아가기도 하고 홀로 명배우들의 연기를 따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맞은 고교 1학년. 예배를 드리다 문득 피아노 반주자로 쓰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무작정 몸이 움직였다. 당시 클래식 전공자로서 교회 반주를 맡고 계셨던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저 피아노를 전공해서 반주자로 섬기고 싶어요.” 놀란 건 선생님뿐이 아니었다. 가족들도 성화였다. 취미라면 모를까 전공으로 피아노를 준비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거였다. 하지만 마음에 씨앗 뿌린 새로운 꿈은 어느새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굳은 결심은 고등학교 자퇴로 이어졌다. 다른 예비 전공자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피아노 연습량을 메우기 위한 결단이었다. 교회는 한결 같이 내 곁에 함께하는 연습실이 돼줬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피아노 연습, 삼각 김밥에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운 뒤 독서실에서 검정고시와 수능 준비를 하는 ‘주연야독(晝練夜讀)’ 생활로 2년여를 채웠다. 그렇게 보낸 인고의 시간 끝에 나는 하나님께 약속했던 섬김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지금은 나의 피아노 스승이 돼줬던 반주자 선생님과 함께 같은 교회에서 반주자로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최근엔 또 다른 섬김의 자리에서 일상 속 기쁨을 누리고 있다. 주일 예배를 마친 뒤 주일학교 아이들과 큐티(QT) 교제를 나누는 교사로서다. 하나님 앞에 한없이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희락에 다가서려 하고 탕자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오늘도 건반 위에 손을 얹고 묵상하듯 손가락에 힘을 준다. 묵상이 깊어질수록, 하나님과의 교제가 늘어날수록 생각이 바뀌어 간다. 더 화려하고 난도가 높은 연주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연주가 무엇일지가 가슴 속 악보에 새겨진다.
일상의 빛 ‘프로그래밍’ (손재원·23·컴퓨터공학과)
나의 하루는 기숙사에서 시작돼 기숙사에서 마무리된다. 자그마한 공간 중에서도 컴퓨터가 놓인 책상 앞이 내 몸이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자리다. 화면엔 수많은 코딩 언어들이 채워져 있다. 이 언어들을 조합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현해내는 것이 컴퓨터 공학도로서의 내 일상이다.
챗GPT 인공지능(AI) 가상현실(AR) 등 ‘컴퓨터공학’ 하면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게 많은 시대다. 하지만 20년 전 초등학교 6학년생 재원이에겐 이런 단어들은 공상과학 영화 속 장면일 뿐이었다. 대신 재원이는 타자가 빨랐다. 그렇게 시작된 자그마한 호기심이 동네 PC방 터줏대감으로 이어지고 컴퓨터 공학도의 길을 연 셈이다.
컴퓨터 공학도로서 요즘 내가 가장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은 높은 학점을 받을 때도,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완성했을 때도 아니다.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오류가 발생했을 때 어느 곳이 문제인지를 붙잡고 몇 시간을 씨름하다 오류를 잡아냈을 때다.
떠올려본다. ‘하나님도 그러시지 않을까.’ 무엇이 죄인지도 모른 채 숱한 죄를 지으며 세상을 살다가 어느 순간 회개하며 하나님께 고백할 때, 하나님께선 신앙의 오류를 잡아낸 한 창조물을 흐뭇하게 바라보실 거다.
프로그래밍은 그 과정 자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강의를 마친 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목,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볼 때면 세상을 창조한 최고의 프로그래머가 하나님임을 자연스레 깨닫는다. 식당과 카페의 키오스크, 버스와 지하철의 도착을 알리는 계기판, 내 손을 떠나지 않고 들려 있는 스마트폰 등 프로그래밍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깊은 밤 기숙사에서 큐티(QT)를 하며 기도제목을 가슴에 새겨본다. ‘기술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하는 것.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일상의 빛 ‘장애와 비장애’(박소은·21·사범대 특수교육과)
유년 시절부터 내 시선엔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자주 들어왔다. 학교에도 교회에도 장애인 친구들은 늘 일상을 함께 했다. 착한 친구도 있고 거짓말하는 친구도 있었으며 공부를 못하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친구도 있었다. 비장애인과 다를 것 없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하나님은 특수교육 현장을 공부하는 대학생으로서의 나를 예비해두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줄곧 이 길을 준비하며 학창시절을 지낸 건 아니었다. 그 과정엔 숱한 전환점들이 찾아왔다. 육상부 선수였던 초·중학생 시절엔 체육 선생님을 꿈꿨고, 콘텐츠 디자인에 꽂혀 특성화고에 진학했다가 1년 만에 금융경영학과로 전과하기도 했다. 공기업과 은행권 취업으로 길을 내려 던 사이 다시 찾아온 꿈이 특수교육 교사였다.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경험하고 초등 특수교육 교사로 근무하는 오빠도 힘이 돼줬다.
사람에게 ‘기억’이란 단순히 기술적인 암기력의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때론 뭉클한 감동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내겐 그 감동이 지난해 장애 아동과 함께 한 수업을 통해 확장됐다. 지적 장애가 있는 친구들은 대개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부끄러움이 많아 인사도 발표도 잘 하지 못하던 한 친구가 있었다. 11주간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그 친구에게 유독 마음이 갔다. 수업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생기고 상호작용도 눈에 띄게 좋아지는 모습이 고마웠던 친구였다.
늘 헤어짐은 아쉽다. 방학이 지나고 내게도 기억이 조금씩 흐릿해질 때쯤 후배들 응원 차 수업 시간에 찾아갔다. 바로 그 때, 한 눈에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인사하는 친구가 있었다. 기억이 감동으로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기숙사-학교-교회가 일상의 ‘삼각 동선’인 내게 학과 선교부실은 포근한 아지트다. 여기엔 다른 지역에서 나고 자라온 내가 천안을 ‘제2의 고향’처럼 느끼게 하는 영적 가족들이 늘 상주한다. 같은 전공의 테두리 안에서 신앙으로 꿈을 그려가는 이들이다.
여러 가지 전환점을 거친 뒤 특수교육 교사로서의 출발선에 선 지금이 나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넘치는 날들이다. 무언가가 시작되고 멈추고,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할 땐 늘 두려움이 적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나를 이끄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천안=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