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영한 (24) “주여, 숭실대에 신학과·신학대학원 설립되게 하소서”

입력 2024-09-03 03:09 수정 2024-09-12 10:30
김영한 기독교학술원장(오른쪽)이 1998년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 예배를 드리는 모습.

1996년 인하대병원에서 대장암 수술 후 병상에서 간절히 기도한 게 있다. “숭실대에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세우기도 전에 데리고 가시나이까. 주여!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다음 해인 1997년은 숭실대 설립 100주년이었다. 학내 백주년기념관에서 연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다시 한번 기도했다. “주여, 이 대학의 정신이 되는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이 설립되게 하소서.”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고 건학 이념인 기독교 정신을 가진 숭실대에 신학연구기관이 없는 건 학교의 정신이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신학 전공 설립이 내 봉직 이유였다.

하나님은 우리 간구를 들으시고 그분 뜻을 이루실 때 주변의 환경을 적합하게 조성해 준다. 예상치 못했던 좋은 일이 생겼다. 단설 대학원을 설립하고자 하는 국내 뜻있는 인사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김영삼정부의 교육부에서 단과대학 없는 단설대학원 설립 인가법을 통과한 것이다.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했다.

개인적 친분이 있던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을 이삼열 철학과 교수와 함께 찾았다. 이 전 장관에게 숭실대에 기독교학대학원이 있어야 할 필요성을 설득했다. 그러면서 그간 숭실대기독교문화연구소에서 개최한 목회자 세미나와 기독교문화 강좌, 국제 기독교 문화 및 신학학술대회를 개최한 자료를 제출했다. 이 전 장관은 담당자에게 내용을 잘 검토하라고 지시한 뒤 내게 물었다. “학부가 없는 기독교학대학원이 세워지면 누가 책임지고 이끌고 나가겠는가.”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명료히 대답했다. “제가 책임지고 할 것입니다.”

그해 가을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인가가 나왔다. 숭실대를 향한 하나님의 높은 뜻이 부족한 사람을 통해 20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드디어 내가 숭실에 온 하나님의 뜻이 이뤄졌다. 암 투병 중 병상에서의 기도와 절규를 듣고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 것이다. 생애 중 가장 보람을 느낀 시간이었다. 이런 노력의 대가를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고 그래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말씀이 이뤄진 것으로 믿었다. 하나님은 항상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사용한다.

교육부가 인가한 기독교학대학원에는 신청한 대로 4개 학과 허가가 나왔다. 나는 초대원장으로 임명을 받았다. 설립자로서 숭실의 신학은 숭실의 창립자인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의 네비우스 정신에 입각한 선교 신학을 계승하고 평양 숭실의 졸업생이요 한국 개혁신학의 정립자인 박형룡 박윤선 한경직 강신명 방지일 목사의 신앙과 신학을 계승하는 것이라 천명했다. 기독교신학과는 내가, 기독교문화학과는 박용우 교수, 기독교사회학과는 이삼열 교수, 목회상담학과는 박종삼 교수가 주임을 맡아 특색 있게 이끌어나갔다. 각 학과에 15명을 정원으로 출발했다.

숭실대에 재직한 지 20년 만에 기독교학과와 기독교학대학원이 설립됐다. 이후 이들 전공이 뿌리내리는 데 14년을 봉직했다. 2007년부터는 이효계 총장의 열정에 힘입어 박용우 김영종 교수, 김경완 전도사의 협력으로 교내에 숭실대학교회를 시작했다. 은퇴할 때까지 5년을 이 교회 담임목사로 예배를 집례했고 교제도 나눴다. 숭실대에서 1978년부터 2012년까지 총 34년을 봉직하게 해준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한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