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경력의 지도자가 아닌 깊은 내공의 소유자. 2024 파리올림픽 여자 탁구 대표팀의 오광헌(54) 감독은 이렇게 정의 내릴 수 있겠다. 국가대표 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아니지만, 40년 넘는 탁구 인생에서 쌓은 경험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겉만 번지르르한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도 풍겼다.
파리올림픽에서 32년 만에 한국 탁구에 멀티 메달을 안긴 ‘삐약이’ 신유빈(20)이 오 감독을 “제가 만난 최고의 감독님”이라고 추켜세웠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신유빈은 이번 대회에서 혼합복식과 여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신유빈이 인정한 최고의 감독을 만났다.
올림픽 이후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으나 그는 연신 웃었다. 여자 탁구 대표팀은 이번 파리 대회에서 최고의 호흡을 자랑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메달을 거머쥐는 성과도 냈다. 오 감독에겐 최고의 감독이라는 칭찬이 따라붙었다.
그런 그에게도 가슴 아픈 기억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 감독은 선수 시절 한 번도 국가대표로 선발된 적이 없다. 초등생 시절 탁구부가 없어 전문 지식 없는 선생님에게 탁구를 배웠다. 탁구부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인 선수 생활에 접어들었으나 우여곡절이 많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운동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무서운 지도자를 만나 훈련에 불참하는 등 방황하기 일쑤였다. 겨우 진학한 대학에선 3학년 때 탁구부가 해체되는 일도 겪었다. 이때 선수 생활을 반강제로 접어야 했다. 오 감독은 “대학 졸업 후 한 실업팀에서 선수로 오라고 해서 준비했는데 그 팀마저 해체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좌절하지 않았다. 대표팀 경력 없는 무명의 오광헌은 지도자로 이름을 날리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탁구채를 잡았다. 오 감독은 “나는 선수로는 틀렸으니 어릴 때 꿈이었던 지도자를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1993년 서울여자상업고 탁구부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매일 같이 오전 6시에 훈련장에 나와 손수 청소하고 운동 준비를 했다. 선수들과 밤늦게까지 함께 땀 흘렸다. 일본 슈쿠도쿠대학 탁구부가 서울에 전지훈련 온 걸 계기로 이 대학 코치로 부임하게 됐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일본행이었다. 여자 대표팀 감독을 지낸 고(故) 천영석 전 대한탁구협회 회장이 중간에서 다리를 놓았다.
일본에서 승승장구했다. 1995년부터 5년간 슈쿠도쿠대학 탁구부 코치를 하다 2000년 4월부터 여자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감독직 첫해부터 5년 연속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었다. 이방인 감독이 이끄는 무명의 탁구팀이 100년 넘는 일본 대학 탁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5년 연속 우승 기록은 슈쿠도쿠대학이 처음이자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2009년부턴 일본 여자 탁구 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주니어팀 감독도 겸임했다. 일본 대표팀 외국인 코치는 오 감독이 처음이었다. 2016년 리우올림픽 여자 단체전 동메달, 같은 해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우승 등 성과를 냈다. 일본 탁구계가 들썩일 정도로 관심도 많이 받았다.
지도자로 성공했으나 마음 한구석이 늘 공허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딸이 학업을 위해 한국으로 가자 한국행에 대한 바람도 커졌다. 22년 만에 일본 생활을 접고 2017년 귀국해 남자 실업팀인 보람할렐루야 감독을 맡았다. 한국에서 지도력을 인정받고 싶기도 했다. 한국에 정착하자 대표팀 감독에 대한 열망도 솟구쳤다. 오 감독은 “일본 대표팀이 올림픽 나가서 메달을 땄을 때 기쁘면서도 한국 탁구가 왜 이렇게 됐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면서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메달이 끊기고 침체기에 빠진 한국 탁구를 다시 일으켜보고 싶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대표팀 감독을 맡고 싶었다”고 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2021년 하반기 대표팀 감독 공모에 지원했고 2022년 1월 여자팀 전임 감독이 됐다. 곧 시련이 닥쳤다. 실력과 무관한 뒷말이 무성했다. ‘국가대표 출신이 아닌 자가 무슨 대표님 감독이냐’는 원성이 빗발쳤다. 오 감독은 “여러 얘기가 들리면서 서러웠다. 또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유빈이와 (전)지희가 여자복식 금메달을 따고 단체전 동메달을 땄어도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됐다”고 서운함을 내비쳤다.
올해 2월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입상에 실패하자 ‘오광헌 책임론’이 불거졌다. 그는 사퇴할 각오로 집에 틀어박혀 열흘 동안 모든 연락을 끊었다. 석은미 코치 등 코치진의 끈질긴 설득으로 올림픽 때까지 가보자고 결의를 다졌다.
오 감독은 선수들에겐 아빠 같은 리더십을 보여줬다. 32년 지도자 생활 중 5년을 뺀 27년을 여자팀만 이끌었다. 무엇보다 선수들과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다. 잘하든 못하든 앞에선 칭찬했고 지적은 문자나 편지로, 남들 안 볼 때 했다.
슬럼프에 빠져 고민하던 신유빈의 마음을 꿰뚫고 석 코치에게 깊은 대화를 나눠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오 감독 자신은 신유빈이 좋아하는 옥수수 메추리알 육포 등 직접 사 온 간식과 손편지를 전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너는 대한민국의 에이스다. 이 모든 게 어떨 때는 부담되고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에이스가 되려면 이겨내야 한다. 너는 즐기면서 하는 아이니까 누가 뭐래도 즐기고 해라, 왜 너는 신유빈이니까. 넌 할 수 있다.” 이 편지를 받고 출전한 브라질 대회에서 신유빈은 보란 듯이 혼합복식 우승을 차지했다.
부상으로 은퇴를 고민하던 전지희(32)에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계속 불어 넣어줬다. 세계랭킹이 30위권으로 처져있던 전지희는 오 감독에게 “감독님 저 정신 차리고 랭킹 올릴게요”라고 말했다. 올림픽 직전 15위까지 랭킹을 끌어 올렸다.
일본에서만 20년 넘게 보낸 오 감독이 스타 플레이어 신유빈, 중국에서 귀화한 전지희, 이은혜(29)와 프랑스 파리에서 함께 팀을 이룬 건 어쩌면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동화 같은 스토리를 써냈다.
2028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얘기를 꺼내자 그는 “내 나이가 54세다. 그땐 예순 가까이 된다”며 손사래쳤다. 오는 11월 말까지 대표팀 감독 임기를 다하고 이후엔 실업팀 등에서 후진 양성에 집중할 계획이다. 오 감독은 “화합하고 선수들이 스스로 목표 의식을 갖는 팀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대표팀 생활을 돌아봤다.
오 감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무명의 오광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저는 엘리트 선수도 스타 플레이어 출신 감독도 아니지만, 대표팀 감독으로 올림픽 메달을 따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힘든 일을 이겨냈고 꿈을 이뤘다. 스타 플레이어가 아닌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