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열지 않던 노숙인, 지금은 인사… 사랑으로 녹여

입력 2024-08-30 03:01
고양 홍익교회 교인들이 29일 서울 영등포구 햇살보금자리에서 노숙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돼지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29일 오후 3시가 지나자 서울 영등포구 햇살보금자리 주차장으로 승합차가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8명의 여성은 능숙하게 음식 재료를 내린 뒤 주방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노숙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폭염 속에 이곳을 찾은 이들은 경기도 고양 홍익교회(손철구 목사) 교인들이었다. 햇살보금자리는 1997년 IMF 금융위기 때 거리로 나온 노숙인을 돕기 위해 영등포산업선교회가 만든 시설이다.

주방으로 들어간 교인들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자리로 이동해 식사 준비에 나섰다. 이날 메뉴는 미역국과 돼지고기볶음, 멸치꽈리고추볶음과 감자샐러드였다. 식당 한쪽에 쌓여 있는 꽈리고추가 내뿜는 매운 냄새로 콧속이 얼얼해졌다. 다른 한쪽에서는 갖은 양념으로 돼지고기를 버무리고 있었다.

주방 봉사에 참여한 교인들의 평균 나이는 52세였다.

돼지고기볶음 담당 진구열(57) 권사는 “늘 하는 일인데 힘들 게 뭐가 있느냐”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봉사에 참여한 교인들 대부분이 오랫동안 함께해 온 동료들이어서 손발이 잘 맞는다”면서 “1~2명 정도가 올해 처음 시작한 이들이고 대부분은 3년 이상 봉사한 경력자로 항상 든든하다”며 반색했다.

봉사자들은 뭐든 능숙하게 해냈다. 꽤 많았던 재료가 이들의 빠른 손놀림으로 30분도 채 되지 않아 음식으로 변했다. 주방에는 한 마디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도마에 칼이 부딪히며 내는 ‘탁탁’ 소리만 가득했다. 정겨운 소리끝에 배식대에 따뜻한 음식이 하나둘 자리잡았다.

노숙인에게 한 끼를 대접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프로젝트’는 이 교회가 2017년부터 하는 사역이다. 봉사자들과 함께한 손철구 목사는 “2017년은 공동체가 재정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였다”며 “이때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우리보다 더 힘든 이웃을 돌아보게 하셨다”고 회상했다. 교회는 이를 계기로 교회 주변 독거노인을 돌보고 노숙인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장애인들까지 돌봤다. 소외된 이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돼 준 셈이었다.

최옥향(63) 장로는 4년째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노숙인들은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장기간 얼굴을 익히다 보면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하는데 보람이 크다”며 “공동체로 사역을 진행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봉사를 처음 시작할 때는 노숙인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함께 교제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면서 “그러나 2~3회 만남의 시간이 쌓이다 보니 이들을 향한 마음이 편해졌고 두려움도 없어졌다. 지금은 이들을 만나는 게 너무 기다려진다”고 밝혔다.

글·사진=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