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죽음을 앞둔 한 여인에게 이 책의 시를 읊어준 일이 있다. 나치 정권에 맞서다 순교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수용소에서 이 책을 꾸준히 읽었으며 이를 주제로 마지막 저작을 남겼다. 닐 암스트롱과 함께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 에드윈 올드린은 지구 귀환 전 이 책을 인용해 소감을 전했다. 아일랜드 록밴드 U2는 2015년 전 세계 순회 콘서트에서 공연을 마칠 때마다 이 책의 내용이 인쇄된 종이를 흩뿌렸다.
이미 눈치챈 이들도 있겠지만 이들의 결정적 순간에 함께한 이 책은 구약성경의 ‘시편’이다. 2000여년 교회사에서 시편만큼 그리스도인에게 꾸준히 사랑받은 성경 본문도 드물 것이다. 제2성전 시기(BC 530~AD 70)에 최종 완성된 시편은 신약 시대 유대인과 초대교회 교인들이 즐겨 노래했다. 신약성경에서 시편이 인용된 곳만 최소 196회에 달할 정도다.
예수 역시 당시 ‘시편 애호가’ 중 한 명이었다. 성전에서 매매하는 이들을 내쫓은 ‘성전 정화’ 사건에 대제사장과 서기관이 반발하자 예수는 시편 8편 2절로 응수했다.(마 21:12~17) 자신을 배반할 제자가 나올 것을 예고할 땐 시편 41편 9절을 사용했다.(요 13:18) 십자가 수난 중에는 시편 22편 1절로 육체와 영혼의 고통을 표현했다.(마 27:46) 부활 후 제자들 앞에 나타났을 때도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모든 것이 이뤄져야 할 것”을 강조했다.(눅 24:44)
동서고금의 그리스도인에게 수천 년간 시편이 적극 활용된 건 인간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기도문이기 때문이다. 시편에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내용뿐 아니라 원수를 적나라하게 저주하는 내용도 꽤 많다.(시 109편 등) 기도를 듣는 당사자인 하나님을 원망하는 내용도 서슴없이 등장한다.(시 44편 등) 이런 시 대부분은 향후의 소망을 드러내거나 복수의 권한을 그분께 넘기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암울한 어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예도 적잖다.
일견 무엄하고 거룩해 보이지 않는 이들 기도도 성경에 포함된 건 “하나님께 무엇이든 다 아뢰라는 시편의 권유”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시편의 기도에는 어떤 감정도 배제되지 않으며 어떤 주제도 논외가 아니”라는 의미다.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조직신학 및 신학과 문화를 가르치는 저자가 시편에 매료된 것도 복잡다단한 감정이 담긴 기도에서 한결같이 사랑으로 응답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해서다.
1996년 미국 리젠트신학교 재학 중 만난 은사 유진 피터슨 목사의 제안으로 매일 한 편씩 시편을 읽은 그는 점차 ‘이 책의 언어’에 푹 젖어 들었다. 저자는 시편의 매력을 세간에 알리기 위해 2016년 U2의 리드보컬 보노와 피터슨 목사가 등장한 기록 영화 ‘보노와 유진 피터슨:시편’을 제작했다. 책 역시 영화처럼 시편 기도로 얻는 유익을 알리기 위해 지난 2020년 미국에서 출간했다.
제목 그대로 책에는 시편을 활용해 ‘마음을 열고 두려움 없이’ 기도하는 법이 수록됐다. 저자는 특히 시편 37, 82, 113편 등 ‘정의’를 다룬 본문으로 사회정의를 위해 기도해볼 것을 권한다. “시편 기자는 사회의 구조적 불의를 보는데 그리스도인, 특히 서구의 복음주의자는 개인의 죄밖에 보지 못할 수 있다”고 꼬집는 그는 영국 작가 CS 루이스의 말을 인용해 현 그리스도인의 행태를 고발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정의 대신 자비를 부르짖지만 시편 기자들은 불의 대신 정의를 부르짖는다.”
“시편에서 우리는 적나라한 솔직함을 만난다”는 서문 속 피터슨 목사의 말이 그대로 와닿는 책이다. 보노 역시 “시편은 우리 속을 정통으로 꿰뚫어 본다”며 “이 책을 읽으면서 자아가 들춰진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면 무장해제가 필요한 사람일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는 ‘벌거벗은 자아’로 부르짖어도 안전하다는 말이다. 애통이든 분노든 안심하고 표현하자. 보노의 말대로 “시편의 시는 당신을 꼭 있어야 할 자리로 이끌어 줄 것”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