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산맥’ 카이퍼를 탐험하는 여행자들에게

입력 2024-08-30 03:05

네덜란드 수상이자 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는 다이아몬드 같은 사람입니다.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빛을 냅니다. 누군가에겐 세상을 바꿀 열쇠를 쥔 신학자이지만 또 다른 이에겐 조심히 다뤄야 할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카이퍼를 친절하고도 흥미롭게 소개합니다.

책은 저자가 카이퍼가 돼 독자에게 전하는 한 편의 긴 편지입니다.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어느새 카이퍼 사상이라는 거대 산맥을 훑고 지나온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카이퍼의 상황과 한국 사회와 교회가 처한 역사적 맥락도 상세히 살핍니다. 독자는 이 두 맥락을 살피며 카이퍼 신학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동시에 이를 현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카이퍼 이해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어려움을 제거한 책이기도 합니다. 카이퍼 사상의 핵심인 기독교 세계관과 영역 주권은 다양한 문헌에 흩어져 있습니다. 책은 방대한 카이퍼 저작 중에서 이들 개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주요 조각을 저자가 모은 결과입니다.

여러 지혜가 담긴 책이지만 더 고민해 보면 좋을 요소도 분명 있습니다. 저자는 카이퍼의 긍정적인 면을 너무 크게 강조합니다. 카이퍼도 자기 이데올로기가 있었고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소신을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 카이퍼가 칼뱅주의를 수용하면서도 칼뱅을 초월하려 한 것처럼 저자가 카이퍼를 능가하는 면모를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역 주권과 합리성에 대해서도 조금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흔히 사회 여러 영역에서는 자연 이성이, 교회 내에서는 성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카이퍼도 이런 구분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성경 속에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 지점에 있어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나아가 영역 주권의 근간인 신학적 바탕에 대한 논의도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책이 한국교회에서 갖는 가치는 큽니다. 네덜란드 미국 한국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어 한국교회 갱신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기쁘게 읽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카이퍼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방대한 저작 때문에 주저하셨던 분에게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하늘샘 목사 (미국 칼빈신학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