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통과에 곳곳서 임단협 타결… 의협은 총파업 시사

입력 2024-08-29 00:17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3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임현택(오른쪽) 의협 회장이 28일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진료지원(PA) 간호사 합법화 규정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됐다. 연합뉴스

간호계 숙원이었던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진료지원(PA) 간호사의 합법화 길이 열렸다. 간호사 비중이 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병원별 임금·단체협상 결렬 시 총파업을 예고했지만, 간호법 통과 이후 조정안에 합의하는 사업장이 늘어나고 있다. 반면 의사단체는 간호법이 의료사고를 늘릴 것이라며 총파업을 시사했다.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은 간호사·간호조무사 등 간호 인력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다. 특히 보건의료계의 관심이 가장 컸던 것은 PA 간호사 업무에 관한 조항이었다. 간호법 제12조는 ‘간호사는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진료 지원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고 규정했다. 업무의 구체적인 기준과 내용 등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해진다.

이미 의료현장에서 PA 간호사들은 수술 보조나 진단서 작성 등 의사가 해야 하는 업무를 일부 담당해 왔다. 국내 약 1만6000명이 PA 간호사 업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무 범위가 모호하다 보니 의사나 약사의 영역을 침해한다는 우려도 제기돼 왔다. 하지만 지난 2월 의사 집단행동 이후 전공의 공백을 PA 간호사가 보건복지부 시범사업 형태로 일부 메우고 있었고,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됐다. 대한간호협회는 “간호 돌봄체계 구축과 보편적 건강보장을 실현해 나가는 길이 열리게 됐다”면서 환영했다.

간호계는 법안 통과가 각 사업장의 임단협 교섭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전날 간호법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사업장 곳곳에서 협상이 타결됐다. 중앙노동위원회와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진행된 조정회의에서 고대의료원과 이화의료원, 중앙대의료원 등 7개 병원 11개 사업장이 임단협 교섭을 타결했다. 이들은 29일로 예정됐던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다.

한양대의료원과 한림대의료원 등 46개 병원 51개 사업장의 교섭이 남아 있지만 간호계는 간호법 타결로 총파업 고비는 넘었다고 보고 있다. 노조 측은 “간호법 합의와 노동위원회의 적극적 중재 노력, 원만한 타결을 위한 노조와 사업장의 성의 있는 교섭 태도 등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파업이라는 극단 대립으로 치닫기보다는 원만한 타결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달리 대한의사협회는 PA 간호사 합법화로 의료 사고가 늘 것이라며 반발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이날 “간호법은 간호사가 진단하고, 간호사가 투약 지시하고, 간호사가 수술하게 만들어주는 법”이라며 “간호사들의 불법 의료행위로 인한 피해 신고센터를 운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협이 반발하는 배경에는 간호법 이후 다른 직업군에 관한 법안 발의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의협은 “의료법 안에서 유기적으로 돌아가던 여러 직업군까지 권리 확보를 위해 단독법 제정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간호법 통과로 의협 내부에서는 “임 회장에게 책임을 물어 탄핵해야 한다”는 등 격앙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의협은 총파업 가능성도 내비쳤다. 임 회장은 전날 긴급 시국선언을 통해 “(간호법이 통과된다면) 의료를 멈출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앞서 지난해 4월 간호법이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행사 전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을 당시 의협은 간호조무사 등 다른 직역과 함께 연가투쟁을 벌였으나 참여율이 높지 않아 의료 공백은 크지 않았다.

김유나 이정헌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