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영한 (21) 한국복음주의협의회와 AEA에서 신학위원장으로 봉사

입력 2024-08-29 03:07
김영한(오른쪽 네 번째) 기독교학술원장이 경기도 청평의 한 쉼터에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임원들과 함께한 모습.

1978년 아시아로잔대회에 참석한 당시 한국 대표단이던 박조준 목사와 한철하 박사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 설립을 위한 준비 모임을 가졌다. 여기엔 조종남 정진경 임옥 김명혁 목사 등 복음주의 인사도 함께했다. 1981년 3월 17일 아세아연합신학원에서 한복협 창립총회를 열고 박조준 목사를 회장으로 선출했다. 박 목사가 초대회장이었으나 목회에 전념해야 하는 관계로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활동이 전개되진 못했다. 한국교회가 부흥하고 복음주의 운동이 확산하고 있었으나 협회 본부가 이를 결집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미국에서 10년 넘게 복음주의 신학을 공부하고 아퀴나스신학원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연구로 교회사와 역사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명혁 목사가 발 벗고 나섰다. 이종윤 목사가 초기 총무로 봉사한 데 이어서 1984년부터 지속해 봉사했다. 온건 중도 성향의 목회자와 지도자가 참여해 결속력을 다졌다. 김 목사는 20년 이상 총무 역할을 맡아 한경직 정진경 임옥 김창인 최훈 목사 등 각 교단 어른을 연결하는 접촉제 역할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한복협은 한국교회 공적 기관의 위상을 갖게 됐으며 복음주의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영락교회 충현교회 신촌성결교회 등을 거점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임원교회(강변교회 신촌성결교회 한국중앙교회 온누리교회 등)를 순방하면서 조찬기도회와 발표회 등을 열며 지속적인 모임을 열고 있다. 한복협은 발표 내용에 있어 정평이 나 있고, 동시에 균형 잡힌 교회 연합운동으로도 자리 잡았다.

2002년 김명혁 목사가 한복협 회장을 맡고 나는 신학위원장으로 위촉을 받아 그해부터 2018년까지 16년을 봉사했다. 한복협의 목적은 ‘열린 복음주의’다. 종교개혁 전통을 계승하되 교회 안에서만 충실한 기독교인이 아닌 하나님 주권 신앙을 갖고 세상에 나가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네덜란드의 복음주의 개혁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칼뱅주의는 좋은 지침이 됐다. 숭실대 재직 시 콘퍼런스에 초청했던 독일 신학자 알브레히트 페터스와 디트리히 리츨, 크리스천 링크와 미하엘 벨커, 미국 신학자 칼 헨리와 캐나다의 스탠리 그렌츠, 영국의 데이비드 퍼거슨, 뉴질랜드의 브루스 니콜스 등도 한복협 강단에 서는 등 열린 신학 포럼을 추구했다. 이들은 학문적 탁월함은 물론이고 복음주의 노선에 있는 명망 있는 국제 기독교 지도자였다.

2008년부터는 아시아복음주의연맹(AEA) 신학위원장으로 8년간 봉사했다. 세계복음주의연맹(WEA) 국제회장을 역임한 김상복 목사께서 AEA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고 나는 신학적 분야에서 자그마한 역할을 했다. AEA에서 활동하다 보면 한국교회의 위상이 특히 두드러진다. 한국이 동남아시아나 중국, 일본보다 늦게 기독교 선교를 받았지만 존 네비우스 선교사가 주창한 ‘네비우스 정책’이 한국교회에서 제대로 구현되었다는 점이다. 한국교회는 선교사로부터 독립해 자립(自立) 자치(自治) 자전(自傳)을 실행하는 교회가 됐다. 규모의 성장과 함께 선교적 교회로도 성숙해간 것이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