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장로교회는 10년 전쯤 예배당을 한 건설사에 매각했다. 오랜 전통의 석조 예배당은 2016년 173가구가 들어설 수 있는 아파트로 탈바꿈했다. 텍사스주 오스틴의 성 오스틴가톨릭 성당도 29층 높이의 저가 주택빌딩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뒤뜰’은 좋아
미 교계에 ‘교회 부지 개발’이라는 새바람이 불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시작된 이 같은 개발 풍토는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확산 추세인데 교인 수 감소에 따른 교회 공동화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교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은 교회 부지의 활용도를 높이는 동시에 무주택자들에게는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성도 감소로 예배당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공공의 선을 창출하는 사례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26일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최근 ‘교회가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이 같은 트렌드 변화를 포착했다. 목회자들이 주일 설교나 교인 상담 외에도 새로운 주택 프로젝트의 최전선에 서 있다면서 활용도가 낮은 교회 부지를 저렴한 아파트로 바꾸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교회의 변신을 두고 “개발 반대 슬로건인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내 뒷마당은 안 돼) 대신 ‘이그비’(YIGBY·Yes in God’s Backyard·하나님의 뒤뜰은 좋아)가 힘을 얻고 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교회부지가 혐오 시설이 아니라 선호 시설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최대 오순절 교파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교회(COGIC·Church of God in Christ)’는 미국 220여개 도시에 워싱턴DC의 절반에 가까운 2만1000에이커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교단은 지난해 11월부터 개발업체와 함께 1만8000여 가구가 들어서는 아파트 건축에 나섰다. 총 3만7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인데, 메릴랜드주 리버데일에서는 이미 아파트 공사가 시작됐다.
시카고의 A교회도 3년 전 개발업자로부터 교회 부지에 아파트를 짓자는 제안을 받았다. 6610㎡(약 2000평) 규모의 부지에 세워진 단층 교회를 팔면 매각 대금에 이전할 장소까지 찾아준다는 조건이었다. 이 교회 담임목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교회가 동네의 중심에 있다 보니 개발 호재가 적지 않았는데 이전 부지를 찾지 못해 결국 무산됐다”고 전했다.
도미노 폐쇄 영국교회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영국의 오래된 교회들은 또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다. 치솟은 건물수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 영국의 기독교인 10명 중 3명 정도(29%)는 출석 교회가 문을 닫으면 다른 교회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교회 건축·보수 지원을 하는 영국의 내셔널처치스트러스트(National Churches Trust)가 최근 자국 기독교인 266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인데, 예배당 존립이 곧 ‘신자 지키기’와 직결되는 분위기다.
내셔널처치스트러스트는 지난해에만 기금 200만 파운드(약 35억 800만원)를 쏟아부어 250여 교회의 긴급 보수를 지원했다. 하지만 이런 지원에도 불구하고 최근 10년간 영국 전역의 교회 중 3500여곳이 폐쇄됐고, 스코틀랜드교회의 경우 교인 감소와 재정 압박을 못 이겨 전체 가운데 40%를 웃도는 교회가 매각됐다.
경매시장 나온 국내 교회들
재정난과 교인 감소를 겪는 국내 교회 역시 남의 일이 아니다. 경·공매 데이터 전문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 들어서만 교회와 사찰 등 종교시설 83건이 경매시장에 나왔다. 이 가운데 14건이 최종 낙찰됐다.
경북 봉화의 B교회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3년 전 교회 문을 닫았고 최근 매물로 나왔다. 강원도 원주의 C교회는 교회 분쟁을 겪으면서 건물이 경매 처분에 이르렀다. 매매 또는 경매 시장에 나온 교회 건물은 종종 이단 단체들에 팔리면서 논란을 낳기도 한다.
이의용 교회문화연구소장은 “성장기 과도한 규모 확장에 따른 후유증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며 “이제는 현실을 반영한 절약(또는 축소) 모드로의 전환을 통해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장창일 김수연 박윤서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