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정신을 토대로 세워진 숭실대는 교수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 학교다. 학교는 내가 재직하는 동안 4년 반의 해외 체류 연구를 허가했다. 타 대학에 비교할 때 연구 여건이 좋은 학문적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다.
당시 강신명 총장의 허락으로 2년간의 첫 안식년을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와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에서 보냈다. 이 기간을 지난 6년간 준비했던 신학 박사 논문을 지도교수의 조언을 받아 수정, 제출하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하이델베르크대 신학 논문이 통과된 게 바로 이때다. 이후 미국 장로교 신학의 본산지인 프린스턴대에서 1년간 개혁신학을 연구하며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조요한 총장의 허락으로 얻은 두 번째 안식년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미국 예일대를 찾았다. 1년여의 영국 생활은 유서 깊은 교회사 현장을 방문하며 영국 청교도 신학을 깊이 체험하는 기회였다. 미국 예일대 신학부에서는 이곳에서 수학한 미국 신학자 조너선 에드워즈의 사상 및 청교도 신학을 연구할 수 있었다.
2004년에 맞은 세 번째 안식년에는 독일 보훔대와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를 찾았다. 1년여의 기간 중 보훔대에서 6개월을 지내면서 함부르크 등 독일 북쪽 지역의 종교개혁 현장을 둘러봤다. 그러고 나서 다시 대서양 건너의 미국 프린스턴대로 돌아와 6개월간 지내며 개혁신학에 더 깊이 천착했다.
안식년 기간에 연구한 내용을 정리해 1987년 ‘하이데거에서 리꾀르까지’를 펴냈다. 현대 해석학의 방향을 소개한 이 책으로 열암학술상을 수상했다.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에서 출발한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현상학적 사유를 해석학적 사유로 전향하게 된 과정을 밝혔다. 하이데거 이후에 독일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와 위르겐 하버마스,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와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에 이르는 필자의 사상 편력을 담았다. 리쾨르에 와서 철학적 해석학은 완성된다고 봤다. 1991년 출간한 ‘한국기독교 문화신학’은 네덜란드 수상이자 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칼뱅주의 사상을 수용해 문화 변혁까지 이르는 사상으로 발전시키자는 착상으로 쓴 책이다. 한국 기독교가 칼뱅주의를 교회 테두리 안에서 협착하게 이해하는 걸 넘어서자는 취지였다.
1999년 한국장로교출판사에서 펴낸 ‘21세기와 개혁신학’ 1~3권으로는 숭실대에서 ‘교수저작상’을 받았다. 이 시리즈의 제1권 ‘21세기와 개혁사상’에서는 21세기 정보·세계화 시대의 도전 가운데 기독교 지성과 복음주의 신앙, 교회와 신학의 과제를 제시했다. 제2권 ‘포스트모더니즘과 개혁신학’에서는 종교 다원주의와 다양성 및 해체성이 특징인 포스트모더니즘을 정의하고 성경의 영감과 권위, 무오를 중시하는 개혁 신학의 과제를 논했다. 마지막 권인 ‘개혁신학의 현대적 이해’에서는 후기 현대주의 도전에 직면한 정통 개혁신학의 입장에서 복음화론 무속비판 철학 영성론 생태론 종말론 등 주요 교리를 다뤘다.
은퇴를 앞두고 연구 업적이 훌륭하고 강의에 충실했다는 공로로 2011년과 2012년 ‘숭실 펠로우십 교수’로 선정되는 영광도 안았다. 이후 1978년부터 34년간의 교수 활동을 마감하고 2012년 정년 퇴임했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숭실대에서 인생 황금기를 바쳐 봉사하고 건강하게 퇴임할 수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