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목회자들의 공부와 교제의 장 늘푸른아카데미는 늘 계속됩니다”

입력 2024-08-27 03:01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중앙교회에서 만난 김연기(왼쪽) 목사와 정영관 목사. 감리교 은퇴 목회자 특별 강좌 프로그램인 ‘늘푸른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이들은 “원로목사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김연기 목사와 정영관 목사의 나이는 각각 92세, 90세이다. 어떤 일을 도모하거나 유지하기가 어려울 것처럼 여겨지는 나이지만 두 사람은 지금도 매달 셋째 혹은 넷째 목요일 오전 11시가 되면 서울 종로구 중앙교회(이형노 목사)에서 특별한 행사를 연다. 감리교 은퇴 목회자를 위한 특별 강좌 프로그램 ‘늘푸른아카데미’가 바로 그것이다. 강좌가 열릴 때면 백발이 성성한 은퇴 목회자 약 100명이 교회를 찾는다. 수도권은 물론 대전 천안 춘천 등지에서 오는 이도 있다. 늘푸른아카데미가 시작된 것은 2007년 6월. 자그마치 17년이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2일 중앙교회에서 만난 두 목사는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늘푸른아카데미와 함께한 17년

늘푸른아카데미는 목회자 3명의 뜻이 한데 모이면서 시작됐다. 주인공은 2003년 5월까지 효창감리교회를 섬기다가 은퇴한 김 목사와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감독회장을 지낸 고(故) 김봉록 감독, 기감 서울연회 감독을 지낸 고(故) 나원용 감독이었다.

이들은 2007년 6월 11일 기감 감독회장을 지낸 김진호 감독을 초청해 교단의 장정개정 문제를 다룬 강좌를 진행하도록 했다. 특이한 것은 그다음 달부터 이어진 강좌였다. 정치 경제 환경 문화 국방 과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무대에 올랐다. 강연자 면면만 봐도 이 프로그램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 김 목사는 늘푸른아카데미의 시작을 회상하면서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에 관심 있는 목회자가 있을 거란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반응이 좋을지는 몰랐다”고 했다.

늘푸른아카데미의 원년 멤버인 나 감독은 2014년 12월 별세했고 김 감독은 2017년 8월 하나님 품에 안겼다. 사실상 김 목사가 실무를 도맡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정 목사가 합류했다. 과거 35년간 중앙교회에서 시무했던 그는 은퇴 이후 8년간 중국 선교에 전념한 뒤 한국에 돌아온 상황이었다. 현재 김 목사와 정 목사는 각각 늘푸른아카데미의 이사장과 원장을 맡고 있다.

“강좌를 들으러 오는 목회자들이 그런 얘길 많이 해요. 평생 모르고 살던 분야를 알게 되니 기쁘다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껴요.”(정 목사)

공부와 교제의 공간, 늘푸른아카데미

늘푸른아카데미는 코로나19로 강좌를 열 수 없던 2020년 2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를 제외하면 거의 매달 빠짐없이 개최됐다. 두 목사를 만난 이날은 늘푸른아카데미의 187회차 강좌가 열린 날로 연단에 오른 이는 국립청소년해양센터 초대 원장을 지낸 유흥룡 박사였다. 다음 달 19일 열릴 188회차 강좌에서는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장을 지낸 이인규 박사의 강연이 예정돼 있다.

특이한 것은 늘푸른아카데미가 은퇴 목회자들이 모이는 교제의 장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참가자들은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 내린 뒤 강좌가 열리는 교회로 향한다. 안부를 주고받고 강연을 듣고 행사가 끝나면 교회 인근 식당으로 흩어져 점심을 먹는다. 식비(각 1만원)와 강사료는 늘푸른아카데미와 뜻을 함께하는 후원 교회 10곳이 책임진다.

이날 김 목사와 정 목사는 강좌가 시작되기 1시간 전부터 교회 로비와 예배당을 돌아다니며 은퇴 목회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예배당에는 강연이 시작되기 직전 특별 찬양 무대를 선보일 아펜젤러합창단이 찬양을 연습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늘푸른아카데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묻는 말에 정 목사는 미소 띤 얼굴로 이렇게 답했다.

“바통을 이어받을 후배들은 이미 있어요. 늘푸른아카데미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