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5세 남성 A씨는 3년 전부터 부모와 떨어져 홀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하루 두 끼로 식사를 때웠다. 점심은 냉동볶음밥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은 배달 음식으로 해결했다. 주로 찜닭이나 찜갈비, 탕·찌개류를 시켜 먹었다. 원래 체중이 120㎏이었는데, 자립 이후 70㎏이 늘었다. 저녁에 반주로 곁들이던 술도 습관이 됐다. 혈압이 150/90㎜Hg로 높아졌고, 지방간으로 간 수치(GOT/GPT)가 64/93 IU/ℓ를 찍었다. 해당 수치의 정상 기준은 0~40IU/ℓ다. 건강에 이상 신호를 느낀 후 병원을 찾아 의료진과 영양사의 도움을 받았다. 하루 세 끼 식사로 바꾸고 기름진 음식과 나트륨 섭취를 줄이는 등 노력으로 현재는 90㎏까지 몸무게를 줄였다.
#2. 지방 출신인 26세 여성 B씨는 서울에 직장을 잡으면서 식사가 불규칙해지고 건너뛰기 일쑤였다. 다이어트를 위해 탄수화물을 멀리했고 저녁은 닭가슴살과 샐러드 위주로 먹었다. 나름 노력했지만 체중은 빠지지 않았고 직장 스트레스로 수면장애까지 겹쳤다. 건강검진 결과 체지방 분석에서 근육량이 부족하다고 들었다. 혈액 검사에선 당뇨병 전단계, 고중성지방혈증, 고지혈증 소견을 받았다. 영양소 섭취 불균형이라는 진단을 받고서야 자신의 생활습관을 되돌아봤다.
‘나 혼자 살다’가 건강 빨간불
A씨와 B씨는 오상우 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실제 진료한 환자들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나 혼자 산다’는 것이다. 건강에 경고등이 들어왔다는 점도 같다. A씨는 고도 비만과 그에 따른 혈압, 간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고 B씨는 영양 불균형과 운동 부족으로 인한 당뇨병, 고지혈증 위험을 안게 됐다.
과연 이들만의 문제일까. 한국인 특성을 대표하는 국가 공인 영양조사 자료 분석 결과 국내 1인 가구의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파르고 이는 비만과 만성질환의 급속한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상우 교수와 인제대 일산백병원 윤영숙 교수팀이 2007~2021년 19세 이상 7만7565명의 국민건강영양조사 데이터를 분석해 최근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14년 사이 국내 가구의 세대 구성은 급속히 변화했다. 조부모와 부모, 자녀 등 3세대 이상이 같이 사는 가구는 2007년 15.9%에서 2021년 4.9%로 크게 줄었다. 부부, 미혼 자녀 등 2세대가 함께 사는 가구도 감소했다. 반면 1인 가구는 같은 기간 4.6%에서 13.9%로 약 3배 늘었다. 1인 가구는 전 연령층에서 상승했고 특히 젊은 층에서 증가 속도가 가팔랐다.
1인 가구의 건강과 영양 문제, 그로 인한 질병 위험도 확인됐다. 1인 가구에서 비만(체질량지수 25~29.9㎏/㎡)과 고도 비만(30㎏/㎡ 이상) 유병률이 가장 높았다. 연령과 성별 등을 보정한 결과에서도 1인 가구가 비(非) 1인 가구보다 비만과 고도 비만 위험이 더 높았다. 정상 체중(체질량 지수 18.5~24.9㎏/㎡)은 1인 가구가 가장 적었고 3세대 이상 가구에서 가장 높았다. 또 1인 가구의 고혈압, 2형 당뇨병, 고지혈증, 고중성지방혈증 위험이 비 1인 가구(모든 세대)에 비해 각각 1.26배, 1.29배, 1.24배, 1.15배 높게 나왔다.
아침 결식은 비만과 다양한 만성질환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1주일에 5일 이상 아침을 거르는 결식률은 1인 가구가 비 1인 가구보다 높았고, 이런 차이는 나이가 젊을수록 확연했다. 19~29세, 30~39세 1인 가구의 아침 결식률은 각각 68.2%, 64%로 절반을 훌쩍 넘었다.
섭취 영양소를 비교한 결과, 1인 가구는 비 1인 가구에 비해 지방, 포화지방산, 단일불포화지방산, 다가불포화지방산, n-6계 지방산 등의 섭취가 더 많았다. 반면 탄수화물, 식이섬유, 칼슘, 인, 나트륨, 철분, 비타민A, 베타카로틴, 비타민B1(티아민), 나이아신, 엽산, 비타민C, n-3계 지방산은 덜 섭취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1인 가구는 비만, 만성질환과 연관성 높은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고 건강에 이로운 다양한 영양소 섭취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밝혔다.
무턱대고 먹는 시대 갔다
오 교수는 “국내 1인 가구의 건강 문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혼자 사는 경우 더 세심한 건강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1인 가구에서 지방 섭취가 많고 단백질과 칼슘, 철분 등 미세 영양소 부족이 눈에 띈다”면서 “끼니를 거르고 몰아 먹는 것보다 차라리 약간 배고프게 세 끼 소량씩 먹는 것이 좋다. 되도록 먹는 음식의 종류를 다양화해 영양 불균형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지인의 추천이나 방송 광고, 유튜브를 보고 몸에 좋다는 특정 식품과 건강기능식품을 사 먹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자신의 몸에 맞지 않게 과하거나 부족하게 먹는 경우가 흔하다는 게 오 교수의 의견이다. 중복해서 영양소를 먹거나 꼭 필요한 영양소를 오히려 덜 먹게 돼 병을 키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소는 생활환경, 식습관, 질병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서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중심으로 정부가 국내에 방대한 식품 영양소 DB를 구축했다. 이를 활용해 어떤 영양소가 부족하고 과하게 먹었는지를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턱대고 건강에 좋다고 뭘 먹는 시대에서 이젠 인공지능(AI)과 유전체 분석 등을 통해 개인 특성에 맞춘 정밀영양의 시대가 가능하게 됐다. 미래 우리 건강을 이끌어갈 새로운 영양 환경 조성에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