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이 빠지는 병’, 배꼽 구멍으로 로봇 수술이 딱이죠

입력 2024-08-27 01:42
고려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신정호 교수가 골반장기탈출증 환자에게 단일공 로봇 수술을 집도하기 전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로봇 수술이 흔히 ‘밑이 빠졌다’고 얘기하는 중장년 여성 질환인 골반장기탈출증 치료의 특급 도우미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배꼽에 작은 구멍 한 개만 뚫고 시행하는 ‘단일공 로봇 수술’은 상처와 흉터가 적을 뿐 아니라 기존 수술법보다 재발률이 6분의 1 정도 낮은 게 장점으로 꼽힌다. 70·80대 고령자가 많은 해당 질환의 수술 위험과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골반장기탈출증은 자궁이나 방광, 직장 등 장기들이 질을 통해 밑으로 처지거나 밖으로 빠지는 현상이다. 나이 들면서 골반 아래쪽의 힘줄과 근육, 근막 등 조직의 탄성이 줄어 장기들이 밑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자연 분만을 여러 번 경험했거나 거대아를 출산했거나 난산이었던 경우, 또 고령일수록 장기들이 빠져나올 가능성이 크다. 50대 이상 여성 10명 중 3명이 경험할 정도로 흔하다.

복압의 증가도 장기 탈출에 영향을 미친다. 뱃살이 많거나 변비가 심하거나 기침을 많이 하는 여성에게서 발병이 잦다. 고려대구로병원 산부인과 신정호 교수는 26일 “무거운 물건을 자주 들거나 쪼그려 앉아서 일을 많이 하는 농촌 지역 고령 여성 중에 질환을 잘 모르거나 창피하다고 쉬쉬하다 병을 키워 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증상이 심해지면 장기들이 상당 부분 내려와서 손에 잡힐 만큼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걸을 때마다 불편하고 염증과 분비물, 상처로 인한 출혈이 생길 수 있다. 소변이 자주 마렵거나 잔뇨감이 있으며 변비, 골반 통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나아가 보행 불편과 수치심으로 외부 활동을 꺼리게 돼 우울증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상황까지 이르기 전에 적극적인 치료 노력이 필요하다.


골반장기탈출증은 장기 탈출 정도에 따라 1~4기로 나뉜다. 장기들이 질 입구 안쪽으로 1㎝ 이내로 내려온 상태가 1기인데, 이땐 수술하지 않고 복압을 올리는 생활습관(무거운 물건 들기, 변비 등) 교정을 하며 지켜본다. 2기 이상 진행된 상태라면 질 밖으로 장기들이 반복적으로 탈출하고 염증이 발생하므로 수술 치료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수술 후에도 3명 중 1명은 재수술을 받을 정도로 재발이 잦다는 점이다. 여러 수술법 중 그나마 재발이 적고 오래 유지되는 방법이 ‘천골질고정술’이다. 다른 수술법들의 5년 내 재발률이 30%인데 반해, 해당 수술은 5% 안팎에 그친다. 이는 특수 그물망을 이용해서 질 쪽의 골반 장기들을 감싸서 묶어준 후 골반을 구성하는 뼈인 천골에 끌어올려서 고정하는 방식이다. 골반 속의 좁은 공간에서 방광과 직장을 질과 분리하고 출혈 위험이 높은 천골을 노출시키며 시행하기 때문에 높은 숙련도가 필요한 수술로 꼽힌다.

과거에는 개복이나 복강경 수술을 통해 진행했는데, 이 방법은 절개 부위가 크거나 구멍을 몇 개만 뚫고 진행하더라도 5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체력이 약하고 만성질환을 앓는 고령자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단점을 단일공 로봇(다빈치SP) 수술로 극복할 수 있게 됐다. 배꼽 부위에 2.5~2.8㎝의 구멍을 내고 로봇 카메라와 수술 기구 등을 넣어 수술한다.

신 교수는 “한 개 구멍으로 로봇 장비가 깊숙이 들어가 안에서 거미손처럼 펴지기 때문에 여러 구멍을 내는 기존 복강경이나 로봇보다 기구끼리 부딪치는 ‘간섭 현상’이 훨씬 적다”면서 “환자의 신체적 부담이 적은 데다 수술 시간도 3시간가량 단축돼 회복이 빠르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2020년 8월 세계 처음으로 골반장기탈출증 단일공 로봇 수술 100례, 지난해 9월 200례를 돌파하는 등 해당 질환의 로봇 수술을 가장 많이 집도했다. 조만간 수술 300례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명성을 바탕으로 고대구로병원은 지난해 글로벌 로봇 수술 장비 기업으로부터 전 세계 최초로 질 탈출증 단일공 로봇 수술 교육센터(Epicenter)로 지정받았다. 신 교수는 “이 질환에 대한 단일공 로봇 수술은 한국이 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대만 등의 의료진이 교육을 위해 직접 한국을 방문하거나 현지 교육 요청도 많이 받고 있다”고 전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