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은 성경 이야기가 펼쳐진 이스라엘과 복음이 퍼져 나간 유럽 각국의 지도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최근 국내 최초로 시각장애 기독교인을 위한 특별한 성경 지도가 탄생했다. 손으로 보는 성경 지도를 만든 주인공은 AL미니스트리(대표 정민교 목사)다. 점자 성경을 읽으면서도 예루살렘의 정확한 위치나 바울 사도의 선교여행 경로를 전혀 알 수 없었던 시각장애인들이 손끝으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손으로 보는 AL 촉각 성경 지도’(AL소리도서관)를 펴낸 AL미니스트리는 2009년 설립된 시각장애인 선교단체다. 지난해 부산에 AL소리도서관을 열어 기독교 서적을 데이지(DAISY·점자나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전자도서)로 보급하는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선교 사역을 펼쳐왔다. 정민교 목사는 시각장애인이 성경 속 지형과 지명을 상상만으로 유추하는 걸 보고 이들을 돕기 위해 촉각 지도 제작에 나섰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25일 만난 정 목사는 “시각장애인은 자신들을 위한 성경 지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지인이 손바닥에 그려주는 대략적인 지도로 궁금증을 채웠다”며 “시각장애인 목회자들이 성서 지리를 확실히 알아야 성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같은 장애를 가진 성도들에게도 정확히 알려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35개의 촉각 지도는 대한성서공회가 만든 성서 지리 지도를 바탕으로 제작했다. ‘창세기의 세계’를 비롯해 ‘로마제국의 모습’ ‘바울의 1·2차 선교여행’ 등 성경 속 배경이 그대로 재현됐다. 지명은 점자로 돼 있으며 바다와 육지는 만졌을 때 촉감이 달라 구분하기 쉽고 국경은 점선으로 표기했다. 저시력자도 볼 수 있게 큰 글씨로 인쇄했고 범례도 만들어 이해를 도왔다. 무료로 보급할 예정인 지도 제작에는 두 명의 시각장애인 사역자가 참여했으며 여러 교회와 성도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AL미니스트리는 많은 시각장애인이 촉각 성경 지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다음 달 2일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세미나도 연다. 정 목사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지도를 들고 성지순례를 떠날 날이 곧 오기를 꿈꾸고 있다”면서 “시각장애인이 불편함 없이 성경을 이해하고 기독서적을 읽으며 신앙을 키우길 희망하며 한국교회도 이들을 품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나가면 좋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 시각장애인 수는 24만8000여명으로 이 중 기독교인은 1% 남짓이라는 게 사역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