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인하 분위기 띄웠지만… 한은, 금융 안정에 더 무게

입력 2024-08-23 00:2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직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총재는 13회 연속 금리 동결 배경과 관련해 “현재 상황에서는 금리를 인하하면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확대할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실이 22일 기준금리 동결에 대해 이례적으로 아쉬움을 나타낸 주된 배경엔 내수 부진이 놓여 있다. 반면 한국은행은 꿈틀대는 부동산시장으로 인한 가계부채 증가 등 금융 불안에 더 방점을 찍었다. 대통령실과 한은은 경기 판단 및 금리 인하로 인한 내수 회복 정도에 대해서도 미묘한 입장 차를 나타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준금리 결정을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고유 권한으로 전제하면서도 내수 진작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그간 기준금리에 대한 정부·여당 입장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6월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했고, 지난 6일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8·10월로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못 박았다. 윤 의원은 이날도 금리 동결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 8일 경제전망에서 내수 부진을 이유로 기준금리 인하에 힘을 실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금리 인하가 생각보다 지연됐다”며 “8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금통위 회의에서 부동산에 대한 우려가 집중된 것을 의식한 듯한 발언도 있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6일 “(8·8) 부동산 공급 대책이 금리 인하에 더 좋은 여건을 조성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8월 금통위를 앞두고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금리 인하 분위기를 조성해온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인하를 위해선 부동산시장이 먼저 안정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부동산에 관한 언급만 40회가 넘었다. 이 총재는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고 거기로 돈이 들어갔다가 경기가 나빠지면 부동산 경기를 다시 올리고 하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한국경제에 좋은가 생각할 때, 금통위원들이 굉장히 강하게 그런 고리는 한번 끊어줄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10월 금리 인하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부동산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면 인하 시점이 더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 총재는 내수 부진 문제에 관해선 금리 인하 폭을 조정하거나 시간을 두고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부동산 불안으로 인한 금융 안정이 더 시급하다는 의미다. 이날 한은이 성장률을 0.1% 포인트 낮춘 것은 1분기 깜짝 성장 결과 과도하게 높인 것에 대한 기술적 조정이지 전반적 경기 흐름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아직 경기 기조가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금리 인하에 따른 내수 진작 효과에 대해선 고령화로 인한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 등을 고려할 때 한계가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정치권이나 다른 여러 기관에서 금리를 낮춰야 소비가 많이 회복된다고 설명하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