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계열사 간 합병 성사를 위한 총력전을 펴는 와중에 합병 반대를 공식화한 국민연금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최태원 회장까지 나서 이해관계자 설득에 열을 올리던 분위기에 국민연금이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가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22일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해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안건에 대해 반대 결정을 내렸다.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7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SK E&S 합병계약 체결 승인 건’을 의안으로 올릴 예정이다.
국민연금은 SK이노베이션 지분 6.21%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최대주주인 SK㈜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36%라 국민연금의 반대만으로 부결까진 어렵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결정으로 지분 53.49%를 소유한 소액주주들의 판단이 요동칠 수 있다. 합병 성사가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도 변수다. 국민연금이 보유 지분 전량에 대해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규모는 6650억원에 달한다. 주주들의 총 청구 규모가 합병 계약상 SK이노베이션이 설정한 매수 한도인 8000억원을 넘기면 합병 계약을 해지하거나 조건을 변경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22일 종가 기준 10만6200원으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금액인 11만1943원보다 5.13% 싸다. 오는 26일까지 주가가 11만원을 밑돌면 국민연금 및 소액주주의 청구권 행사 가능성이 커져 SK이노베이션의 주식 매수 비용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도 지난 21일 “동일한 최대주주를 둔 상장사 간 합병 과정에서 이해 상충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합병 비율이 산정됐다”며 주주들에게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주요 의결권 자문사에서 나온 첫 반대 권고였다. 앞서 ISS, 글래스루이스 등 글로벌 자문기관과 한국ESG연구소는 찬성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SK그룹은 그룹 리밸런싱의 대표주자 격인 양사의 합병 완성을 위해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었다. 최 회장은 전날 이천포럼 폐막 세션에서 “결국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토털 에너지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 미래 사업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양사 간 합병의 당위성을 구성원들에게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5일부터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에 ‘SK이노베이션 SK E&S 합병’ 사이트를 개설해 합병·통합 시너지, 주주들의 주요 질문 및 이에 대한 답변, 임시 주주총회 소집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