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 시대, 미등록 이주민도 끌어안아야

입력 2024-08-22 03:02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공생 방안이 교계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사진은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증언대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3월 경기도 여주의 농민단체들이 여주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외친 구호의 핵심은 “이주민 근로자 단속 반대”였다. 정확히 말하면 미등록 이주민(불법 외국인 노동자)이다. 농번기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역할이 절실한데 이들마저 추방되면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이주민과의 공생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이 지역의 노동 현장에서부터 터져 나온 것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미등록 이주민은 지난해 말 현재 43만명으로 집계됐다. 2010년 초반 10만명대에서 4배 넘게 급증했다. 이에 따라 국내 노동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불법 체류자를 강제 추방하지 말고 법적 테두리 안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박경서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는 2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은 이제 이주민이 없어서는 안 될 사회”라면서 “미등록 이주민 가운데 미진한 절차나 체류 기간 만료로 등록을 못 한 경우도 많다. 이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도록 돕는 한편으로 정당하게 세금도 내게끔 하는 소위 ‘세컨더리 정책’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교계에서는 포용의 가치관을 추구하는 기독교 정신을 기반으로 한 ‘이주민 공생’에 대한 논의가 본격 시작됐다.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원장 신승민 목사)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공간 이제에서 ‘다문화 속의 타자, 이주민’ 에큐포럼을 열고 이주민과 동고동락 방안을 모색했다. 현장 사역자들은 정부 당국의 무차별적인 단속이 능사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 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집 대표인 김현호 대한성공회 신부는 “현재 파주 법원읍의 등록 인구는 1만명도 되지 않는데 상당수의 이주민이 이 지역에서 다양한 일거리를 도맡으며 채우고 있다. 인구 감소 시대에 이주민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파주시 거주 외국인 노동자 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8100여명이며, 미등록 이주민까지 감안하면 2만~3만명에 달한다.

김 신부는 “법무부가 고강도 단속과 추방을 하고 있지만 단속 만으로 미등록 이주민의 수를 줄일 순 없다. 오히려 기존 노동현장과 한국문화에 익숙해진 이주민을 정식 등록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포럼에서는 이주민과 동행하는 해외사례도 눈길을 끌었다. 차미경 아시아의친구들 대표는 “한국처럼 내국인 노동자를 구하기 어려운 스페인에서는 정기적으로 미등록 내국인을 사면해 내수시장 위기 해법을 마련한다”면서 “정부가 경제적 역사적 정치적 위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이주민에 대한 혐오는 늘고 불평등과 차별이 당연시 여겨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성식 법무법인KNC 변호사는 “미등록 이주민은 빠른 시일 내 그 규모를 최소화하는 것이 이주민에 대한 국민 인식을 개선하고 포용 사회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라고 제안했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