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서 죽어가던 여섯 퍼피, 현관문 열면 쏟아지듯 와락 [개st하우스]

입력 2024-08-2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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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기, 박주희 부부가 구조한 모견 깜댕이와 여섯 강아지의 모습. 남편 박충기씨는 희귀난치병 루푸스를 20년째 앓는 부인을 보살피는 와중에도 다니는 공장에 출몰하는 유기견들을 구조해 입양처를 찾아주고 있다. 깜댕이와 여섯 강아지는 퇴근하고 돌아온 박충기씨를 마중 나올 정도로 성장했다. 제보자 제공

“어미개가 찾아온 건 지난 봄이었어요. 성격도 순해서 공장 동료들이 예뻐하며 매일 밥을 챙겨줬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춘 거예요. 걱정돼서 뒷산을 뒤졌더니 세상에, 기진맥진한 깜댕이가 여섯 마리나 되는 젖먹이를 품고 있었습니다.”

-경기도 오산 제보자 박충기(39)씨

“삑, 삑, 삑” 오후 7시 직장에서 퇴근한 제보자 충기씨가 현관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자 거실에 웅크리고 있던 개들이 쫑긋 귀를 세웁니다. ‘덜컥’ 현관문이 열리고 곧바로 어미개 깜둥이와 여섯 퍼피가 쏟아지듯 충기씨를 향해 달려나갑니다. 180㎝ 넘는 충기씨가 허리를 숙이자 녀석들은 충기씨의 얼굴이며 손을 마구 핥습니다.

“여보 왔어?” 병상에 누워있던 아내 박주희(38)씨가 힘겹게 발걸음을 뗍니다. 주희씨는 루푸스병으로 20년째 투병 중입니다. 루푸스는 면역체계가 신체조직을 공격해 염증이 생기는 희귀난치성 질환이죠. 주희씨는 몸 여기저기 물이 차오르고 합병증으로 매달 항암치료까지 받느라 걷기도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런 주희씨 곁을 한결같이 지켜온 충기씨. 주희씨가 병마와 싸우기 시작한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충기씨는 20년간 아픈 아내를 지키는 것 말고는 다른 데로 눈 돌리는 법이 없는 남자입니다.

딱 하나를 빼면 말입니다. 충기씨는 갈 곳 없는 유기견들만 보면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그런 부부의 품에 3개월 전 어미개 ‘깜댕이’와 여섯 퍼피가 찾아왔습니다. 충기씨가 직장 근처에서 새끼를 낳고 탈진한 유기견 깜댕이를 발견해 가족 전체를 안고 집에 온 겁니다. 이미 2마리의 유기견을 돌보고 있던 주희씨는 난감했어요. 하지만 주희씨는 깜댕이네를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해요. 여리고 착한 남편 충기씨의 마음을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게 바로 주희씨였거든요. 주희씨 어머니는 “사위가 이 큰일을 벌여놓은 거여”라며 타박을 하지만 말입니다.

부부의 정성스런 보살핌 덕분에 퍼피들은 어미젖을 떼고, 퇴근길에 마중나오는 의젓한 반려견으로 자라났습니다. 주희씨는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순하다는 ‘시고르자브종’답게 퍼피들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며 “마음껏 뛸 수 없는 저를 대신해 퍼피들을 산책시켜줄 건강한 가족을 찾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도와주세요 멍멍” 찾아오던 유기견

제보자 충기씨는 경기도 용인의 작은 공장에서 일합니다. 공장 뒤편에는 인적이 드문 야산이 있는데 수년째 개들이 몰래 버려져서 들개 서식지가 됐습니다. 크고 작고 건강하고 병든 온갖 개들이 사시사철 버려졌어요. 품종견 리트리버부터 진돗개나 믹스견까지. 버리는데는 품종도, 나이도 상관이 없었죠. 그렇게 버려진 개들은 주민을 위협하는 떠돌이 들개가 됐는데 개중 순한 개들은 사람 손길을 잊지 못해 공장을 찾아와 밥 동냥을 하기도 했습니다.

충기씨는 유기견이 내려올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 시보호소에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수용공간이 가득 찼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게 일상이었죠. 공장까지 찾아와 구걸하는 유기견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충기씨와 동료들은 돈을 모아 구호용 사료와 개집을 마련해 유기견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 손을 탄 개들은 구조해서 입양을 보내기도 했어요.

그러던 지난 3월 깜댕이가 공장을 찾아왔습니다. 종종 공장을 찾아오던 유기견 리트리버가 낳은 새끼인데 그새 훌쩍 자라 돌아온 겁니다. 충기씨와 동료들은 오랜만에 나타난 녀석이 반가웠어요. 그러고는 얼마 뒤. 뒷산을 오르내리며 회삿밥을 얻어먹던 깜댕이가 며칠째 보이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된 충기씨는 깜댕이를 찾아 뒷산을 헤맸고, 잠시 뒤 땅굴 속에서 탈진한 깜댕이를 발견했습니다. 녀석은 사람 손바닥보다 작은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습니다. 오래 굶었는지 어미는 탈진하고, 새끼 7마리 중 1마리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어요.

그냥 두면 모견 깜댕이도, 새끼도 모두 굶어 죽을 위기였습니다. 충기씨는 고민 끝에 깜댕이와 새끼들을 모두 구조하기로 했습니다. 충기씨는 “크기가 작은 새끼들은 가슴에 메는 포대기 가방에 담고 모견 깜댕이는 산책줄에 달아 산에서 내려왔다”고 설명합니다. 느닷없이 주렁주렁 강아지들을 달고 나타난 남편을 보고 아내는 뭐라고 했을까요? 주희씨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고 해요. 마음 따뜻한 남편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거라는 걸 주희씨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주희씨 마음도 같았거든요.

깜댕이와 여섯 퍼피들은 충기씨네 집에 새 보금자리를 꾸리게 됩니다. 주희씨는 빨강에서 보라까지 무지개색 옷을 준비해 퍼피들에게 입혔습니다. 다견가정에서는 모견의 돌봄에서 소외당하는 개체를 특정해 돕기 위해 퍼피에게 색깔 옷을 입혀 구분합니다.

부부의 정성스러운 돌봄 덕분일까요. ‘빨주노초파남보’ 6남매는 어미 젖을 떼고 생후 3개월의 건강한 퍼피로 성장했습니다. 덩치도 몇 배나 커져서 여섯 마리가 담겼던 구조용 가방에는 이제 한 마리도 담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영리한 리트리버가 섞인 어미개를 닮아서인지 배변패드 사용법도 금세 익혔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부인 주희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여섯 마리가 쪼르르 침대맡을 찾아오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모른다”며 흐뭇해합니다.

퍼피가족, 입양자를 모집합니다
기본적인 배변 및 사회화 교육을 마치고 입양자를 모집하고 있다. 전병준 기자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퍼피들을 바라보는 구조자 부부가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이 많은 퍼피에게 가족을 찾아줘야 하기 때문이죠. 배변 훈련과 사회화가 잘 돼 돌봄은 어렵지 않지만 주희씨가 투병 중이므로 자라나는 퍼피에게 충분한 산책과 놀이를 제공하기는 어려운 형편이죠.

유기동물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연을 소개해 파랑이 한 마리가 입양처를 찾았고, 남은 5마리가 가족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주희씨는 “퍼피들이 정말 영리하고 활발하다”면서 “난치병으로 인해 함께 뛰놀 수 없는 저를 대신해 퍼피들을 놀아줄 가족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9일 개st하우스팀은 경기도 용인의 충기씨 자택에서 구조된 퍼피들을 만났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입양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 14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동행했습니다. 충기씨가 퇴근하면 달려 나오던 깜댕이와 다섯 퍼피들. 하지만 낯선 취재진이 도착하자 활발한 노랑이를 제외한 네 마리(빨강, 연두, 분홍, 보라)는 침대 밑에 숨기 바쁘더군요. 숨바꼭질하는 모습도 귀엽지만 새 가족을 만나려면 숫기를 더 길러야겠죠.

해법으로 미애쌤은 퍼피들의 모방심리를 이용한 사회화 연습을 제시했습니다. 생후 3~4개월은 반려견의 공포 시기로, 낯선 상황에 놓이면 모견 혹은 주변 동료의 반응을 모방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외부인을 반기는 노랑이를 반복해서 보상하면 남은 4마리 퍼피도 점차 외부인을 따르게 됩니다.

교육은 1시간가량 반복됐습니다. 전문가가 현관문을 열자 노랑이는 마중 나와 간식을 보상받고 나머지 4마리는 가구 밑에 숨었죠. 그런데 5번째 시도에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침대 아래 숨어있던 연두가 노랑이를 뒤따르며 전문가쌤을 반겨주더군요. 나머지 퍼피도 가구 아래 숨지 않고 방문객을 응시하는 정도로 경계심이 줄어들었습니다. 미애쌤은 “모방심리를 이용한 교육은 효과가 뛰어나다”며 “모범견을 반복 칭찬하면 다른 개들의 사회성도 금세 기를 수 있다”고 총평했습니다. 교육을 반복하고 2주 뒤, 부부가 보내온 영상에는 찾아온 손님을 달려와 반기는 퍼피들의 모습이 잘 담겨있었습니다.

깜댕이와 5남매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따뜻한 부부가 구조한 깜댕이와 6남매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 모견 깜댕이: 1살 리트리버 믹스견, 13㎏ / 중성화 x
- 여섯 퍼피: 생후 3개월 퍼피, 2㎏ / 빨강·주황·노랑·보라 암컷 / 연두 수컷
- 대인사회성과 대견사회성 모두 뛰어남
- 실내외 배변 가리지 않음. 배변패드를 잘 사용함 (모견은 화장실 배수구를 사용하는 영리한 견공)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1GzSdTMOVi5ol4-ZPXgOsoRct7FnIB4gXjwEW-fjf6ZM/viewform?pli=1&pli=1&edit_requested=true

■깜댕이와 노랑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37, 138번째 견공입니다 (102마리 입양 완료)

-깜댕이와 노랑이의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전병준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