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대학의 채플은 교양 필수과목으로 운영하는 게 효과적이다. 의무 채플을 싫어하는 반응도 있지만 훗날 대학 시절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 제자도 꽤 됐다. 졸업생끼리 학창 시절 추억을 떠올려보면 채플 시간을 자주 언급하곤 했다는 것이다. 이때 졸거나 혹은 다른 생각에 사로잡혔다가도 스쳐 지나가는 강사의 말이 마음에 새겨졌다는 간증도 접했다. 다만 출결 관리는 탄력적으로 운영했다. 출석 횟수가 모자란 학생을 무조건 탈락시키기보단 봉사에 참여하도록 안내했다. 채플 취지를 살리면서 학생과도 소통하는 지혜로운 방법이라 생각한다.
교회 설교가 성도에게 구원의 복음을 알리는 것이라면 대학 채플의 설교는 이와 더불어 기독교 가치관을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 채플 설교와 함께 성경과 기독교개론 등의 강의로 학생에게 기독교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이들 수업과 설교에 임하는 내게 나침반이 됐다. 숭실대에서 34년 봉직하면서 이 구절을 학문적으로 해설한 저서도 냈다. ‘기독교개론’(1996) ‘21C 세계관과 개혁신앙’(2006) ‘기독교 세계관’(2009) ‘포스트모던 시대의 세계관’(2009) 등이다.
아울러 기독교 가치관 전수에는 각 전공의 기독 교수가 인도하는 성경공부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학생들은 목회자가 신앙 이야기를 할 때보다 전공 교수가 간증할 때 더 귀담아듣는다. 당시 김영호(영문과) 어윤배 박종삼(사회복지학과) 김영훈(법학과) 고재귀(물리학과) 교수가 인도한 성경연구반이 잘 운영됐다. 이들 교수의 신앙이 활동적이어서 학생들에게 잘 어필했다.
미국 대학의 경우는 릴랜드 라이큰 휘튼대 영문학 교수를 꼽고 싶다. 우리말로도 번역된 라이큰 교수의 책 ‘기독교문화관’은 내용이 훌륭해 당연히 기독교 전공 학자가 쓴 것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평신도 교수였다. 그의 또 다른 책인 ‘청교도 이 세상의 성자들’ 역시 청교도의 삶을 예로 들며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그의 저서는 기독교 세계관 분야에서 참고할 만한 좋은 지침서다.
독일에서 귀국 후 숭실대에 교수로 부름을 받아 교목 일을 하면서 놀란 게 있다. 이 역사 깊은 학교에 학문적으로 기독교를 변증하고 성경과 기독교 세계관을 연구하는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1897년 창립된 기독교 대학인 숭실대는 신학과가 없음에도 후발주자인 연세대와 이화여대에는 모두 기독교 신학을 다루는 전공 학과와 신학대학원이 있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낸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폐교한 숭실대가 기독교와 성경을 연구하는 전문 학과와 대학원이 없는 건 이 전통에 합치하지 못한다고 봤다. 그렇지만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설립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당시 수도권 대학 정원 내에서 학생 수를 확보해야 해 기존 학과에서 인원을 떼어오는 구조인지라 신학 전공의 정원 확보가 쉽지 않았다. 정원을 감축하려는 기존 학과를 찾기 어려워서다. 매해 신학과와 신학대학원 개설을 시도했으나 내외 여건으로 여의치 못해 결국 이를 설립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