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숨바우길, 원시림 계곡·얼음굴·고원 지대,여기는 폭염 불가침 구역

입력 2024-08-22 03:51
항골계곡 숨바우길의 마지막 비경인 긴폭포를 찾은 탐방객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길게 늘어진 폭포 주변 바위와 초록 이끼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이색 피서지가 인기다. 강원도 정선에는 시원한 골짜기와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신비스러운 얼음굴, 서늘한 고원 지대 등 더위가 침범할 수 없는 명소가 많다. 자연의 선물과 일상의 쉼표를 얻을 수 있다.

먼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원시림 바위 숲길을 걸으며 ‘무(無)더위’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북평면 항골 숨바우길로 가보자. 항골은 상원산(해발 1421m)과 백석봉(1170m) 사이에 비밀처럼 숨어 있는 계곡이다. 물이 차가워 ‘찰 한(寒)’을 써서 ‘한골’이라 부르던 게 자음동화로 ‘항골’이 됐고, 한자로 옮기면서 ‘목덜미 항(項)’자를 썼다.

‘숨바우’란 호흡을 통한 숲속 명상과 푹신한 원시림 바위 숲길을 걸으며 가볍게 숨 쉬듯 산책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숨바우길은 2022년 10월 개통한 신생길이다. 산림청 주관 걷기 좋은 명품숲길 50선에 꼽혔다.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최적의 트레킹 코스다. 계곡은 사람 손 덜 탄 원시림으로 가득하다. 바위엔 진초록 이끼가 길섶에는 양치식물이 푸르름을 자랑한다. 촉촉한 습기를 머금은 초록의 향연이 마음마저 상큼하게 한다.

숨바우길 표식 뒤로 원시림 계곡을 향하는 탐방객.

길은 50여 년 전 나무 나르던 산판(山板·벌목)길이다. 숨바우길 탐방로의 전체 길이는 7.7㎞ 남짓. 무너진 돌길을 복원하고 인공을 더했다. 위험구간엔 친환경적 데크를 설치했다. 비상시 대비 진출입로도 있다. 중간 세 곳에서 임도와 연결된다. 진출입로는 대개 반환점의 기준이 된다. 세 번째 진출입로까지는 4.7㎞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완만한 경사로 이뤄져 걷기 편하다. 곳곳에 마련된 숨바우길 표식과 이정표가 있다. 중간중간 명소 해설도 친절하다.

출발지는 마을 내 관리 휴양지다. 초입에 마을 주민들이 쌓은 돌탑이 있다. 1980년대 초반 나전광업소 탄광이 들어서면서 북평면은 한때 8000여명이 거주할 정도로 북적였지만 1992년 나전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사람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주민들은 과거 탄광촌의 번영을 기원하며 1998년부터 돌탑을 쌓았다.

숲길 들머리부터 새소리 물소리가 가득하다. 입구에서 약 180m 올라가면 좌측에 큰 너래바위가 나타난다. 바위에는 포트홀인 돌개구멍이 여러 개 형성돼 있다. 예전에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주민들이 천렵을 즐기던 장소라고 전해진다.

푹신한 흙길 위로 울창한 활엽수 잎이 햇볕을 가려 청량한 그늘을 드리운다. 선물 같은 바람이 땀을 실어간다. 청정한 계곡수가 이룬 여러 소(沼)와 담(潭)이 잇따른다.

먼저 제1용소다. 소의 깊이는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바닥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다고 한다. 이후 화전민터, 거북바위, 모래소, 왕바위소, 제2용소, 쌍폭포, 긴폭포 등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명소가 순차적으로 반긴다. 긴 폭포를 넘어서면 길은 등산로 구간이다. 등마루 쉼터 지나 백석봉까지 가파르다.

작은 폭포 아래 옥색 물빛을 자랑하는 숨바우길 제2용소.

항골계곡 입구에서 골지천 건너 맞은편에 장열리 ‘365행복마을’에 ‘신비의 얼음굴’이 있다. 장열리의 한자는 길 장(長), 즐거울 열(悅)이다. ‘오랫동안 즐거운’ 동네라는 의미다. 장열교를 건너 마을에 들어서면 논과 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뒤쪽에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려 있다.

머리 하나 들어갈 크기의 풍혈인 '신비의 얼음굴'.

그 산 한쪽에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굴이 있다. 차를 대고 나무데크 등으로 잘 정비된 길을 5분가량 오르면 사람 몸 전체가 들어갈 만큼 큰 굴이 아니라 머리 하나 들어갈 크기의 풍혈(風穴)을 만난다. 얼음을 볼 수 없었지만 바깥 공기와 만나는 입구의 온도는 4.7도로 낮아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수 있다. 얼음굴 바로 앞에 데크에서 보는 전망도 시원하다.

시원한 풍경을 펼쳐놓는 하이원리조트 하이원 탑 일대.

높은 산 위에서 보내는 여름도 시원하다. 해발 1330m의 만항재에서 이어지는 운탄고도를 따라가면 백운산을 만난다. 그 자락에 하이원리조트가 자리한다. 하이원에서 겨울 시설인 스키장을 여름에 즐기는 방법은 2.8㎞ 길이의 운탄고도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1340m의 하이원 탑까지 편안하게 이동해 시원한 풍광을 눈과 마음에 담는 것이다. 내려올 때는 중간 마운틴 허브에서 국내 최장인 2.2㎞ 길이의 알파인코스터를 이용해도 좋다. 10곳의 업다운과 뒤틀림, 회오리로 구성된 코스를 최고 시속 40㎞로 질주하면 시원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여행메모
나전역 카페 ‘곤드레 라테’ 독특
명상 요가·한방차… 힐링&웰빙

정선아리랑의 발상지인 여량면 아우라지.

강원도 정선 '항골 숨바우길'은 차량으로 평창·진부에서 30~40분, 강릉에서 1시간 안팎이면 닿는다. 산책로는 숨바우길 입구~제1용소~거북바위~왕바위소~쌍폭포~등마루쉼터~백석봉까지 7.7㎞로, 3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입구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신비의 얼음굴'은 '정선군 북평면 장열리 산109'를 찾아가면 된다. 마을 곳곳에 새롭게 설치된 안내판을 따라가면 쉽다. 좁은 농로라서 우회전 또는 좌회전할 때 빠지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다.

주변에 가리왕산 케이블카, 로미지안 가든, 아우라지 등 둘러볼 곳도 많다. 나전역 카페는 정선선의 간이역인 나전역을 활용해 '곤드레 라테'등 지역 특산물로 만든 독특한 메뉴를 낸다.

강원랜드는 힐링과 웰빙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이원 웰니스센터에서 하는 명상 요가, 한방차 만들기 등이 대표적이다.



정선=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