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고시원에 구원의 손길을

입력 2024-08-24 03:00

경기도 파주 금촌동에는 희한한 고시원이 있다. 가난이나 질병 탓에 절망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에게 뭉근한 보금자리가 돼주는 장소, 바로 금촌고시원이다. 형편이 너무 어려운 이에겐 방값이나 식비도 받지 않는 이곳엔 사시사철 아픈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술에 절어 평생을 산 사람,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사람, 마약에 중독된 사람, 사업이 망해 거리로 내몰린 사람, 알 수 없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 특이한 것은 이곳에서 예배가 열린다는 점이다. 투숙객 10여명은 매 주일은 물론이고 토요일에도 격주로 예배를 드린다. 토요 예배를 인도하는 이는 경기도 수원 아름다운예배교회(김빛나 목사) 김명진 부목사로 그는 2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금촌고시원을 이렇게 소개했다. 누구나 하나님의 환대를 느낄 수 있는 장소라고,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는 곳이라고.

금촌고시원은 어떤 곳?

지난 4일 경기도 파주 금촌고시원에서 만난 오윤환 원장. 하나님이 누군가의 영혼을 구제할 때 크리스천은 ‘구제의 통로’가 돼야 한다는 것이 오 원장의 신념이었다. 그는 “기독교인이라면 자기 자신이 가난하고 누추한 사람들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한 통로가 되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금촌고시원을 찾은 날짜는 푹푹 찌는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4일이었다.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물 2층 입구에 다다르자 유리문엔 ‘이 집에 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고시원에 들어가 고시원 주인인 오윤환(71) 원장과 짧은 인사를 주고받는데 갑자기 남루한 행색의 한 노인이 고시원을 찾아왔다. 오 원장은 노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방에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말 것을 당부했다.

“투숙하려면 전화번호가 필요해요.”

“전화번호? 그런 거 없어요. 핸드폰은 며칠 안에 살 거예요.”

“가족 없어요? 자식은요?”

“연락 끊긴 지 30년이 넘었어요. 이민 갔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그렇게 노인의 투숙 절차가 마무리되고서야 인터뷰가 시작됐다. 노인이 무엇을 하다가 여기까지 흘러오게 됐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순 없었다. 이곳에서 투숙객의 인생 스토리를 캐묻다 보면 취재가 끝도 없이 이어질 게 분명했으니까. 오 원장은 노인을 돌려보낸 뒤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제가 건강이 좋지 않아요. 혼자서 모든 걸 하려니 너무 힘이 들어요. 고시원을 찾는 이에게 전부 방을 내줄 순 없는 상황이에요. 정말 죽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만 받고 있어요.”

오 원장은 과거 서울의 한 신문사에 다녔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치고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면서 1998년 6월 회사를 나왔고 방황을 하다가 2002년 4월 고시원을 차렸다. 당시 금촌고시원은 주로 고시생이 묵는 평범한 곳이었다. 한데 2004년 어느 날 일어난 어떤 사건 때문에 이곳은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특별한 장소로 거듭나게 됐다.

“비가 내리던 밤이었어요. 어떤 아줌마가 아기를 업고 찾아와 하룻밤만 묵을 수 있냐고 묻더군요. 공짜로 방을 내줬죠. 보름 정도 묵을 수 있게 해줬어요. 그런데 이 일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는 거예요. 내쫓을 순 없으니 계속 받아주게 됐고 지금처럼 돼버린 거죠.”

모든 일을 도맡다 보니 고시원 운영이 쉬울 리 없다. 경기도 광명에 사는 그는 매일 새벽 4시30분쯤까지 고시원으로 출근해 투숙객의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아침 식사 시간은 5시30분. 너무 이른 시간이지만 아침 일찍 일터로 향하는 건설 현장 일용직 투숙객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밥상을 선물하려면 어쩔 수 없다.

방값을 내지 않는 이가 많으니 경제적으로 힘든 것도 불문가지다. 삼시 세끼를 전부 제공하는 금촌고시원의 방값은 월 29만~37만원. 하지만 투숙객 30여명 가운데 이 돈을 전부 내는 이는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남는 게 없는 장사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제 그만두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없으면 (고시원에 투숙하는) 저들이 다 어디로 가겠어요. 갈 곳이 없어요. 우리 사회 복지의 사각지대, 그곳에 저들이 있어요.”

고시원, 최후의 보금자리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고시원은 어떤 곳일까. 그 답은 유해연 숭실대 건축학부 교수 등이 최근 발표한 논문 ‘서울시 고시원 거주자 설문조사를 통한 주거환경 개선 방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구진은 서울시 공공데이터포털에 등록된 서울 시내 고시원 5522곳 가운데 연락처가 확보된 2288곳 고시원 관리자에게 연락을 취했으며, 이를 통해 지난해 5~6월 고시원 투숙객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했다. 확보한 유효 표본 규모는 총 3001명이었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평균 고시원 거주 기간은 4.11년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고시원이 이젠 누군가가 잠시 머무는 ‘단기 거주지’의 범주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응답자들이 꼽는 고시원 거주 이유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답변은 ‘임대료가 저렴해서’(51.5%)였다. 현재 거주하는 고시원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문항에서도 ‘임차료가 저렴해서’라는 응답이 3.62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이어 ‘수도세 등의 추가 부담이 없어서’(3.60점) ‘보증금이 없거나 적어서’(3.55점) 순이었다. 고시원의 방 면적은 평균 7.04㎡(2.13평)였으며 고시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떤지 물었을 때 ‘긍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은 4.4%에 불과했다.

실제로 오늘날 고시원은 한국 사회 가난한 사람들이 모이는 마지막 보금자리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알려졌다시피 과거 고시원은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청년들의 공간이었다. 1970년대 고시생들을 타깃으로 서울 관악구와 동작구 일대에 하나둘 생겨난 고시원은 80년대 점차 그 규모가 확대됐다.

하지만 90년대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성격이 달라졌다. 가장 궁핍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됐다. 오 원장은 고시원을 ‘21세기 쪽방’으로 부르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했다. 쪽방에서도 밀려난 사람들, 즉 쪽방을 구할 보증금도 없는 이가 찾는 최후의 주거 공간이 고시원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변두리의 변두리, 그곳에 바로 고시원이 있다.

선교의 사각지대, 고시원

서울 시내 고시원만 5000곳이 넘는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고시원에 관심을 갖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이웃이 머무는 공간, 나눔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곳, 영혼 구원을 위한 최적의 무대가 될 수 있는 장소이지만 고시원 선교에 주력하는 단체를 찾기도 쉽지 않다.

이쯤에서 다시 금촌고시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오 원장은 과거 서울 은평구의 한 교회에서 장로 직분까지 받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는 고시원 곳곳에 십자가를 걸어놓았고 틈틈이 투숙객을 상대로 상담시간을 갖는다.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성경을 읽으면,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을 영접하면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금촌고시원에서 신앙을 갖게 된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세례를 받고 집사나 권사 같은 직분까지 받은 이도 수두룩하다.

“성격이 포악한 투숙객도 많았고 때로는 맞기도 했어요. 고민이 많았죠. 하지만 성경을 읽다가 깨닫게 됐어요. 사랑이 없는 나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투숙객들이 변하는 모습을 많이 봤고 사랑의 힘을 실감하게 됐어요.”

이쯤 되면 오 원장을 한국 사회 고시원 선교의 최전선에 있는 사역자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한국교회를 향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교회에 몇 번쯤 출석하다가 그만두는 투숙객이 많다고 했다.

“가난하고 더러운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좋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투숙객 중엔 눈치가 보여서 교회에 나가길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고시원 식사보다는 교회에서 주는 밥이 더 맛있는데도 그래요.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예요. 고시원에 한번 와 달라고 요청하면 가겠다고 약속해놓고 오지 않는 일이 많았어요.”

오 원장의 꿈은 온갖 잡동사니가 쌓인 고시원 사무실을 얼마간 구색을 갖춘 예배당으로 바꾸는 것이다.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 그동안 고시원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그가 모아놓은 돈을 헐어 쓰면서 충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도 한계에 부닥친 상황이다. 오 원장은 “가지고 있던 돈도 이제 거의 바닥이 났다”고 했다. 그가 바지 뒷주머니에서 꺼낸 통장에 적힌 잔고는 152만원이었다.

파주=글·사진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