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4년 8월 1일 중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이 5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모리슨은 영국 런던선교회에서 중국에 파견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였다. 그는 신학문 학교인 영화학당(英華學堂)을 세우고 인쇄소를 설립, 정기간행물을 발행했다. 중국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중국어사전’, 한역 신구약성서인 ‘신천성서(神天聖書)’ 등을 남겼다.
1471년 8월 8일 네덜란드의 신비주의자이자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 토마스 아 켐피스가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책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고 우리 마음의 어둠에서 벗어나려면 그리스도의 삶과 그분의 길을 본받아야 한다”고 썼다.
1886년 8월 10일 아일랜드 출신 찬송가 작사가 조셉 M. 스크라이븐이 별세했다. 그의 대표적 찬송은 ‘죄짐 맡은 우리 구주’(369장)로 1855년 멀리 아일랜드에 있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캐나다에서 작사했다. 그는 결혼 직전 약혼자들이 모두 죽는 비극을 두 번이나 당했고 이후 플리머스형제단에 들어가 노인들을 돌보며 여생을 보냈다.
1942년 8월 12일 윌리엄 카메론 타운센드와 L L 레거스 목사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클리프성서번역회(Wycliffe Bible Translators)를 설립했다. 타운센드는 20세기의 대표적 선교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1908년 8월 13일 D L 무디의 전도 여행에서 음악 지도자로 알려진 아이라 D 생키가 별세했다. 그는 미국의 복음성가 가수이며 작곡자로 19세기 후반 미국과 영국의 부흥운동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한국 찬송가에는 ‘나 주의 도움 받고자’(214장)를 비롯해 8곡이 수록돼 있다.
1875년 8월 16일 19세기 최고 부흥사였던 미국의 전도자 찰스 그랜디슨 피니가 별세했다. 근대 부흥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미국의 2차 대각성 운동을 이끌었고 영국의 웨일즈 부흥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피니의 부흥운동은 교회개혁뿐 아니라 당시 미국의 사회적 이슈였던 노예제도 철폐와 인종차별 등의 사회 개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741년 8월 22일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오라토리오 ‘메시아’ 작곡을 위해 런던의 자택에 틀어박혔다. 그는 24일 후 작곡을 완성했다. 그는 “작곡할 때 내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1727년 8월 27일 독일 헤른후트의 모라비안 공동체가 24시간 ‘기도 연쇄’(prayer chain)를 시작했다. 이 기도는 한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공동체에서 적어도 한 명 이상이 하루 중 매 순간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430년 8월 28일 반달족이 로마제국의 북아프리카를 침공한 가운데 아우구스티누스가 열병으로 별세했다. ‘하나님의 도성’을 비롯한 그의 저서들은 반달족의 점령에서 살아남았고 그의 신학은 이후 1000년 동안 교회를 세우는 주요 기둥 중 하나가 됐다.
29년 8월 29일 5세기부터 이날은 전통적으로 세례 요한의 참수일로 전해져 왔다. 요한은 당시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영주)이었던 헤롯 안티파스가 동생 헤롯 필립 2세의 아내인 헤로디아스와 결혼하는 것을 꾸짖은 일로 옥에 갇혔다가 헤로디아스의 딸 살로메가 세례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달라고 요청하자 참혹하게 목 베임을 당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