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요람’ 대학에서 ‘캠퍼스의 낭만’을 주제어로 제시하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두 가지를 떠올린다. 축제, 그리고 동아리다. 청년들의 삶에 지향점을 제시하고 응원하는 ‘영적 축제’로 자리매김한 국민일보 갓플렉스(God Flex)가 처음으로 교회 예배당이 아닌 대학 캠퍼스를 찾아간다. 술판과 추태로 얼룩진 축제, 충격적인 마약 동아리 등 부정적인 소식 때문에 ‘캠퍼스 낭만’ 대신 ‘캠퍼스 절망’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이들에게 분명한 전환점이 될 만하다. 다음 달 4일 충남 천안 백석대(총장 장종현 목사)에서 열리는 집회를 앞두고 갓플렉스가 낭만을 넘어 재미와 의미, 시대적 가치를 품고 활동하는 백석대 캠퍼스의 동아리들을 들여다봤다.
창공에 온기 더하는 ‘푸른 동행단’
‘하늘 위의 꽃’이라 불리는 항공 승무원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설렘을 유발한다. 백석대엔 지역 내 어르신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예비 승무원들이 있다. 바로 관광학부 항공서비스전공 재학생들로 구성된 봉사 동아리 ‘푸른 동행단(회장 이지은)’이다. 이지은(21)씨는 “푸른색 ‘과복(학과 승무원복)’을 입은 푸릇푸릇한 청춘들이 여행을 콘셉트로 동행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단원들의 동행이 이륙을 알린 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해외여행이 위축됐던 2022년 1학기였다. 건강이 좋지 않고 거동에도 어려움을 겪던 어르신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가상 모의 비행’ 체험을 마련한 것이다.
승무원복을 입고 지역 내 양로원을 찾아간 학생들은 책상과 의자를 활용해 항공기 내 복도와 좌석을 구현해놓고 어르신들을 맞았다. 이착륙 음향, 기내 방송 등 실제로 항공기에 탑승한 듯 한 효과를 준비하고, 건강식으로 구성된 기내식을 트레이에 담아 제공하며 현실감을 더했다. 체험을 마무리할 땐 직접 접은 종이비행기에 소망을 적어 날렸다.
이씨는 “매달 한 차례 어르신들을 찾아뵈면서 생신 잔치도 해드리고, 주변 산책로를 함께 걸으며 말벗이 돼 드리면서 오히려 단원들이 온기를 얻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방문할 때 손편지를 써가곤 했는데, 매번 고이 간직했던 손편지를 꺼내며 ‘이날만 기다렸다’면서 단원들을 맞이하는 80대 어르신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덧붙였다.
열사의 애국정신 캠퍼스에 ‘유사모’
호두과자와 함께 천안을 대표하는 상징이 있다. 천안 독립기념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민족의 애국열사 유관순(1902~1920)이다. 백석대엔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동아리 ‘유사모(유관순을 사랑하는 모임, 회장 이연정)’가 28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봄·가을이면 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유관순 학교’를 열고 유관순연구소(소장 박종선)와 연계해 연구 활동을 펼친다. 교내 유일의 역사 동아리인 만큼 관련 활동도 활발하다. 이연정(21, 사회복지학)씨는 “지난해엔 삼일절 한국전쟁 연평해전 한글날 등 매달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에 관한 카드뉴스를 제작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알렸다”고 소개했다.
매주 월요일 오후 동아리방에 모일 때마다 다채로운 아이디어가 모여 활동을 확장해 나가는 것도 유사모만의 정체성이다. 10년째 금요일마다 지역 내 아동센터를 찾아 유아 봉사를 해오면서 ‘유아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부캐(부캐릭터)’도 얻었다.
이씨는 “유관순 열사의 희생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맞닿아 있다”며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애국은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라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예비 경찰의 꿈 키우는 ‘탐정 동아리’
경찰범죄수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동아리를 만든다면? 백석대엔 이 질문에 응답하듯 활동하는 ‘탐정 동아리(회장 박유민)’가 있다. 이들은 영화나 드라마 장면 속 ‘과학 수사’의 단면을 재미있게 들여다보며 전공 체험단 활동을 펼친다.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tvN)’에 출연했던 실종 수사 전문가 이건수 백석대 교수가 지도하는 동아리로도 알려져 있다.
국가 공인 삼단봉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함께 훈련을 하기도 하고, 외부요청에 따라 경호 업무 경력을 쌓는 활동도 하지만 가장 보람 있는 영역은 역시 봉사다. 박유민(20)씨는 “경찰을 꿈꾸는 지역 내 중고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공 체험 수업을 진행하는데 지문 채취, 혈액 반응 검사 등 실제 과학 수사에 활용되는 기법들을 보여줬을 때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고 설명했다.
캠퍼스 신앙 전담케어 선생님?
캠퍼스의 각 학부마다 학생들의 신앙을 전담 케어하는 담임 선생님이 있다면? 백석대엔 이 같은 상상이 현실로 구현돼 있다. 학부 담임목사 제도를 운영하면서 12개의 선교부가 조직돼 크리스천 청년들의 일상 영성에 울타리가 돼준다. 기독교 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감안하더라도 주요 신학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조직이다.
선교부는 학부별로 매주 정기 모임을 가지면서 캠퍼스 영성을 견고하게 다질만한 메시지와 기도제목을 나누고 학기말엔 연합 봉사활동을 떠나기도 한다. 6년째 컴퓨터공학부 담임 목사를 맡고 있는 윤석주(45) 목사는 “틈이 날 때마다 학부 선교부실을 들여다보고 캠퍼스 곳곳을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니며 함께 밥 먹을 학생들을 찾아다니는 게 일상”이라면서 “담임 목사들에게 ‘걸어 다니는 식권’이란 별명이 늘 따라다니는 이유”라며 웃었다.
선교의 불모지로 여겨질 만큼 낮은 캠퍼스 복음화율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한 상황에서 선교부가 힘을 모아 펼치는 ‘화목우주선(화요일 목요일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시간)’은 엔데믹 시대에 보여준 희망의 돛이었다. 교내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베데스다 공원에서 매주 두 차례 각 학부 선교부가 돌아가며 진행하는 체험형 전도 프로그램에 학생들의 마음이 꿈틀댄 것이다.
윤 목사는 “지난 학기에만 3000여명이 초대됐고 811명이 대학 교회에 등록을 했으며, 그 중 200여명이 세례를 받았다”며 “캠퍼스 기독교 문화를 지탱하는 힘의 원천이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동아리방처럼 꾸며져 있는 선교부실은 부원들에게 가장 편안한 쉼터이자 신앙적 사랑방이다. 때로는 캠퍼스 생활의 ‘꿀팁’, 같은 전공을 공부하는 선후배들의 조언이 오가는 스터디 룸이 돼주기도 한다. 컴퓨터공학부 선교부 회장을 맡고 있는 손재원(23)씨는 “아무래도 비슷한 영역에서 예비 사회인으로의 꿈을 그려가는 청년 크리스천들이 모이다보니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최첨단 기술들을 바라보며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다.
천안=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