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애 육상의 레전드’ 전민재(47)는 ‘스마일 레이서’로 통한다. 경기마다 환하게 웃는 모습 덕분에 붙은 별명이다. 그는 19살 때까지 집에 손님이 오면 장롱에 숨던 소심한 소녀였다. 뇌성마비로 일그러진 표정과 곱은 손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전북 진안군 진안읍 반월교회 송현순(67) 사모는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집마다 방문해 전도하면서 민재를 처음 봤을 땐 지금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며 “민재의 근성과 가족, 감독·코치의 사랑 등 모든 것을 민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 덕분인 것 같다”고 감격했다. 전민재는 28일 개막하는 파리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을 포함해 다섯 번째 패럴림픽에 출전한다. 지난 네 번의 대회에선 은메달 3개를 목에 걸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딴 금메달만 5개에 달한다.
신장이 149㎝밖에 안 되는 전민재는 19살에 처음 학교에 갔다.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무기력했던 그가 세상 밖으로 나오겠다고 용기 낸 것은 오동환(68) 목사와 송 사모의 끈질긴 설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평일 기숙사에서 생활한 그를 차로 1시간 거리 집으로 주말마다 등하교시킨 것도 마찬가지였다.
전민재 어머니 한재영(73)씨는 “반월교회 목사님과 사모님, 성도님들이 민재를 많이 도와주셨다”고 했다. 다양한 부류의 장애인이 다니는 중학교에 진학한 것도 오 목사 내외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전민재는 중학교 2학년이던 2003년 육상 선수 활동을 권유한 체육 교사를 만났다.
전민재는 고향에 오면 반월교회에 들러 예배를 드린다. 이번 출국 3개월 전에도 교회에 인사를 왔다. 그는 ‘발편지’로 교회 식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손이 심하게 뒤틀려 있어 발에 펜을 끼워 완성한 것이다. 송 사모는 “예전엔 식당에서 밥 먹는 것도 불편해하던 친구가 세계적인 대회에서 성과를 내고 자신 있게 생활하는 모습이 너무 기쁘다”고 했다.
최근 SNS에서는 전민재가 2016년 리우 패럴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뒤 취재진에 공개한 발편지가 공유되고 있다. 전민재는 당시 A4 용지 3장을 이어 붙인 정도의 긴 노트에 각오와 감사, 소감 등을 적어 왔고 관계자가 이를 대신해 읽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주변에서 ‘너는 못 할 거야. 너는 할 수 없어. 너는 메달을 딸 수 없어’라고 비아냥거리며 제 꿈을 짓밟는 말들로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혼자 눈물을 삼키면서 저 자신을 다독이며 저와의 외로운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훈련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50세가 가까운 나이에 남다른 근성으로 실력을 유지한 노장 선수에 대한 존경을 넘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에 대한 감탄이 이어졌고, 이 영상은 83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