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향한 선제적 행동 계획… “北 원하면 어떤 레벨이든 대화”

입력 2024-08-16 00:25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며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선포한 ‘8·15 통일 독트린’은 지난 30년간 이상론에 머물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자유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명확한 지향점을 부여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선의에 따른 화해와 협력을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기구와의 협력, ‘북한 자유 인권펀드’ 조성 등 선제적·실천적 행동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남북 ‘대화협의체’ 설치를 제안했는데, 대통령실은 북한의 호응을 전제로 남북 정상회담도 열려 있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이 이 구상을 흡수통일론 공식화로 보고 반발할 가능성이 커 대화 성사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역사적 과제가 통일”이라며 8·15 통일 독트린을 제시했다. 이는 3대 통일 비전과 3대 통일 전략, 7대 통일 추진 방안이라는 ‘3-3-7’ 구조로 구성됐다. 7대 추진 방안은 남북 대화협의체 신설,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국제 한반도 포럼 창설 등이다. 북한 주민 스스로 통일을 열망하도록 ‘바깥세상’의 객관적인 실상을 보여주고, 우리 국민에게는 미래학 관점에서 통일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세부 추진 방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남북 대화협의체 신설이다. 북한의 남북 관계에 대한 ‘적대적 두 국가’ 정의, 오물 풍선 부양 도발 등을 거치며 남북 긴장이 고조되기만 해온 국면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모든 채널을 잠근 상태에서 호응을 낙관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정부는 어떤 문제든 논의할 수 있다는 자세로 대화 실마리를 찾겠다는 태도다.

대통령실은 대화 추진 방안이 남북 정상회담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밝혔듯 보여주기식 정치적 ‘쇼’는 하지 않겠지만 진정성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어느 급에서든 북한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도 열려 있느냐’는 질문에 “열려 있다”며 “다만 그 이전에 실무적인 협의와 북한의 호응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 확대’ 방안은 북한 청년 등 미래세대가 ‘자유롭고 평화로운 대한민국, 부강하고 매력 넘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잘 알도록 만들어 자유 통일을 동경토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북한 정권은 한국의 라디오와 TV 방송을 통제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종교단체와 민간단체가 다양한 경로로 제공하는 한국의 콘텐츠를 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확성기나 대북전단은 남북 긴장을 격화할 ‘아날로그적 방식’이며, 이에 과도하게 의존할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만들어진 1990년대 초반은 냉전 종식 후 통일 낙관론이 일던 때였다. 정작 남북은 통일방안의 첫 단추인 화해·협력조차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새로 선포된 8·15 통일 독트린은 이를 보완한 명확한 추진 전략이며, 무엇보다도 ‘거침없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열린 제안’이라고 대통령실은 강조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원하면 어떤 레벨에서든, 하드한 이슈든 소프트한 이슈든 모든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