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구(1880~1949) 목사는 1903년 미국 하와이로 건너갔다. 현지에서 목회 활동을 이어가면서 ‘에와친목회’를 결성해 일본 상품 배척운동을 펼치고 한인 동포의 화합과 권익 보호를 위해 힘을 쏟았다.
러일전쟁이 끝날 무렵인 1905년 8월 4일, 당시 하와이 한인 대표였던 그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함께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는 여름 백악관을 찾아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났다. 그리고 하와이 교민 8000여명을 대표해 한국의 주권과 독립보전에 대한 요청을 담은 청원서를 제출했다.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1949년 3월 국내로 돌아온 그는 우방국 친선 외교와 한·미 간 협약서 작성 등의 일을 맡았으나 그해 6월 세상을 떠났다. 한인 최초로 미국 감리교 목회자 명단에 오른 그에게 정부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독립운동의 본거지, 한인교회
지난 7일(현지시간) 하와이 오아후섬 호놀룰루에 있는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한의준 목사)를 찾았다. 해외 최초의 한인교회다. 윤 목사는 1903년 11월 10일 리버 앤 호텔 스트리트에 있는 모퉁이집 2층 다락방을 빌려 안정수(1879~1940) 문또라(1877~미상) 이교담(1880~1936) 임치정(1880~1932) 선생과 함께 첫 예배를 드렸는데 이 교회 공동체의 시작이다.
교회 내부로 들어서자 100년 넘는 교회 변천사와 발자취가 담긴 기념관이 먼저 방문객을 맞았다. 교회는 미주 한인 이민 역사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이민자의 삶과 믿음의 안식처이자 독립운동을 물밑으로 지원하는 버팀목이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도 1913년부터 1918년까지 교회 지도자(탁사, 한인기숙학교 교장)로 봉사했다.
대통령이 세운 교회
한인기독교회(이제호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1918년 12월 23일 한인 기독교인 30여명과 설립한 교회다. 당시 이 대통령은 경제적 자립과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교회부터 독립돼야 나라도 독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덕희 하와이이민연구소장이 저술한 ‘이승만의 하와이 30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한인 교회가 외국 선교부의 관할에서 벗어나 독립된 교회행정을 할 수 있도록 한인기독교회를 설립했다. 교회는 신흥국어학교를 만들어 1950년대 말까지 운영하기도 했다.
한인기독교회는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한 민족 선각자들이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을 전개한 성지였다. 훗날 교인 가운데 12명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 이 소장은 “하와이 한인교회의 역사는 기독교 역사와 같다”면서 “하와이 한인들의 기도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존폐 기로 독립기념교회
한편 서울 종로구에도 하와이 한인기독교계의 독립운동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교회가 있다. 서울교회(배안용 목사)다. 해방 후 하와이 한인교회는 동포들의 독립운동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념교회를 세우기로 결의했다.
하와이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인동지회’ 공동설립자 이종관 목사가 한국전쟁 직후 귀국해 이승만 대통령의 도움으로 1958년 서울 옥인동 인왕산 자락에 ‘하와이 한인기독교독립교회’를 건립했다. 1964년에는 교회명을 서울교회로 변경했다.
현재 서울교회는 존폐 기로에 놓여있다. 신도수가 급감해 교회가 폐쇄됐고 종로구에선 주민힐링센터로의 용도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서울교회보존추진단 등 기독시민단체는 교회의 역사적 배경을 감안해 ‘하와이독립기념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놀룰루(하와이)=글·사진 유경진 기자 최경식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