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생각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한 편의 강의

입력 2024-08-16 03:03 수정 2024-08-16 12:32
강영안 한동대 석좌교수가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 교수는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선물처럼 주어진 삶의 은총에 감사하는 사람이며, 생각한다는 건 곧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소설가 춘원 이광수는 1917년 9월 잡지 ‘청춘’에 ‘금일 조선 예수교회의 결점’이란 글을 실었다. 이 글에는 4가지 결점이 언급되는데 ‘계급적 구조’ ‘교회 지상주의’ ‘학식 없는 지도자와 허술한 신학 교육’ ‘미신적 신앙 형태’다. 100여년 전 교회가 안고 있던 문제임에도 어딘지 모르게 기시감이 든다. 오늘날 한국교회 역시 이에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최근 ‘생각한다는 것’(두란노)을 펴낸 강영안(72) 한동대 석좌교수는 이들 결점을 한마디로 ‘반지성주의’라고 축약했다. “생각하고 따져보는 태도와 반성적 삶이 결여됐기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고 지적한 강 교수는 비근한 예로 설교에서 종종 등장하는 “믿으면 ‘아멘’ 하세요”란 말을 들었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려면 묻고 따져야지, 왜 무조건 아멘이라고 하느냐”는 이야기다. 신간에서 ‘믿음과 생각은 서로 배척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철학적 사유로 풀어낸 강 교수를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기’란 부제를 단 책은 한국교회 성도를 주 독자층으로 설정했다. ‘현상’(문제 제기) ‘의미’(철학적 논의) ‘행위’(적용)를 살펴보는 저자 고유의 사유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되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에 근거한 해설을 충실히 덧붙였다. 출판사가 그를 “‘복음적 생각’으로 안내하는 우리 시대의 다정한 철학자”라 명명한 이유다.

강 교수가 ‘그리스도인의 생각’에 집중한 건 신앙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내 삶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데 동의하고 그분께 삶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기에 “그냥 남이 말하는 대로 생각 없이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 작가 CS 루이스의 풍자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속 고참 악마가 사용하는 주된 전략도 “환자(기독교인)가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생각 없이 믿으면 “현실의 참된 모습에 직면하지 못해 악마의 유혹에 넘어질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생각하지 않는 믿음의 해악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을 유럽 각지의 수용소로 수송한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를 들어 ‘생각 없는 행동’(thoughtlessness)의 위험성을 알린다. 강 교수는 “아이히만은 목표 달성의 수단을 찾아내는 ‘기술적 사유’ 즉 ‘도구적 합리성’에만 능했다”며 “타인에 대한 존중, 사람에 대한 배려, 고통에 대한 감수성 같은 ‘진짜 해야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누구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악을 저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행 없이 생각에만 머무르는 신앙도 경계했다. 그는 “온전한 생각은 감정을 바꾸고 의지를 충동시켜 실제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며 “먼저 자신과 멀지 않은 가족의 고통부터 생각해보라”고 제안했다. 이어 “주변 지인과 자신이 속한 지역, 더 나아가 세계와 모든 생명체, 특히 사회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점점 많은 이들을 건사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기독교인이 타인에 공감하는 생각과 행동으로 모든 생명체를 넉넉히 품을 수 있는 건 그리스도 사랑 덕분이다. 강 교수는 “기독교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체로 큰 선물 아닌가. 그분께 받은 은혜가 워낙 크기에 기독교인은 충만한 사랑 가운데 상대를 배려할 수 있다”며 이를 ‘넘침의 윤리’라고 정의했다. 그는 “결국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선물처럼 주어진 삶의 은총에 감사하는 사람”이라며 “생각한다는 건 곧 사랑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희랍어와 독일어, 프랑스어로 성경과 여러 철학자의 원서 본문을 인용하며 질문에 막힘없이 답했다. 생각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한 편의 강의를 듣는 듯했다. 강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개신교인을 이기적으로 평가하는 여론이 높았는데 넘침의 윤리 측면에서 보면 이는 모순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흘러넘치게 받은 이들은 이기적일 수도, 배타적일 수도 없다”며 “그리스도에게 선물로 받은 삶을 타인에게 풍성하게 나누는 한국교회 성도가 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