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탈 쓰고 돈벌이 악질 유튜브 무법자

입력 2024-08-17 00:02 수정 2024-08-17 00:02
게티이미지뱅크

1070만 구독자를 보유한 먹방 유튜버 쯔양 협박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사이버 레커’ 유튜버들의 불법 행위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이버 레커는 수익을 목적으로 사회적 관심이 쏠린 주제로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이들이 사실상 규제 공백 상황을 악용해 허위사실을 퍼뜨리거나 특정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등 사회적 폐해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쯔양 사태로 드러난 사이버 레커 폐해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은 쯔양으로부터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당한 유튜버 가로세로연구소 김세의 대표 사건을 지난 9일 검찰에서 넘겨받아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수원지검은 지난 14일 사생활 폭로를 빌미로 쯔양을 협박해 5500만원을 뜯어낸 혐의로 구제역(이준희)과 주작감별사(전국진)를 구속 기소했다. 카라큘라(이세욱)는 공갈 범행을 방조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크로커다일(최일환)도 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고소당해봤자 벌금 나오고 끝난다” “그냥 몇 천(만원) 시원하게 당기는 게 낫지 않나” 등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조사됐다.

구제역 등 사이버 레커의 금품 갈취 의혹이 드러나자 온라인상에서는 비판이 들끓었다. 사이버 레커들은 ‘정의’를 명분으로 유명인 등 개인에 대한 폭로 영상을 올리는데, 사실상 경제적 이익만 노린다는 비판을 초래했다. 사실관계 확인을 소홀히 한 채 명예훼손과 사적 제재를 일삼는 사이버 레커의 자극적 영상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 5월에는 인기 아이돌 장원영을 포함한 유명인 비방 영상을 게재한 유튜버 ‘탈덕수용소’가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유튜버는 비방 영상을 통해 2021년 6월부터 2023년 6월까지 2년간 약 2억5000만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법지대에서 판치는 불법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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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레커가 판치게 된 원인으로 현행법상 처벌 수위가 낮거나 법적 공백이 있다는 점이 꼽힌다. 사이버 레커나 유튜버를 별도로 규제하는 법안이 없는 데다 벌금을 낸 이후 활동을 계속 이어가는 경우가 끊이지 않았다. 벌금보다 유튜브 수익이 더 높은 경우가 많아 ‘벌금만 내면 그만’인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유죄가 인정돼도 실제 처벌은 대부분 소액 벌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으로 접수된 사건은 8712건이다. 그중 1889건(21.7%)만 재판에 넘겨졌다. 이 가운데 1609건이 벌금형 약식기소로 종결됐다. 기소된 사람의 85.2%도 벌금형에 그쳤다.

오동현 민생경제연구소 공익법률지원단 변호사는 국회에서 열린 ‘사이버 레커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영상 업로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이 벌금을 웃돌아 제2의 쯔양, 장원영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불법성 있는 유튜브 콘텐츠를 규제할 실질적 수단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유튜브는 방송에 해당하지 않아 방송법 적용을 받지 않고 사실상 자율 규제로 운영된다. 방송·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대책 마련에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희봉 로피드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현행법상 유튜브 규제는 전통 미디어와 비교하면 사실상 없다”며 “콘텐츠 제공자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사이버 레커 방지법 쏟아지는데

국회에선 사이버 레커 관련 처벌을 강화하고 비방 영상을 통해 얻은 이익을 몰수하는 내용의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조인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 정보통신망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몰수·추징 대상 범죄에 ‘악의적 명예훼손’을 포함했다. 현재 정보통신망법에는 개인정보 수집 관련 범죄를 저지르면 취득한 이익을 몰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처벌 범위를 넓힌 것이다. 조승환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달 30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형량을 높이고, 관련 이익을 몰수토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검찰도 사이버 레커 범죄 대응에 적극적이다. 최근 이원석 검찰총장은 명예훼손, 모욕 등 사건이 반복적·악의적일 경우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허위 콘텐츠로 거둬들인 범죄수익이 특정된다면 몰수·추징보전 및 민사소송 등을 적극 활용해 환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형량 강화만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사이버 레커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가 없는 상황에서 형량만 높이는 것은 자의적 법 적용이 될 위험성이 있다. 포괄적 처벌이 표현의 자유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 변호사는 “상습, 반복성 요건 등 사이버 레커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가 필요하다”며 “과도한 처벌은 정당한 비판이나 고발 행위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유진우 법무법인 새여울 변호사도 “형량 강화가 능사는 아니다. 사이버 레커에 대한 경제 제재와 피해자 보상 등 세밀한 징벌적 배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유튜브 등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전제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8월부터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시행했다. DSA에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온라인 불법 콘텐츠 삭제 의무를 강제하는 규정이 있다. 미국에서도 콘텐츠 사업자의 불법 콘텐츠 면책특권을 삭제하자는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