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백화산, 숭고한 독립정신 위로 흐르는 하늘 별무리

입력 2024-08-15 04:53
충남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독립운동가 이종일 선생 생가 위에 은하수가 흐르고 있다. 주변에는 자유수호희생자위령탑과 충령사 등이 있다.

제79주년 광복절이다. 일제강점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고초를 감내하며 독립운동에 나섰던 선열들이 떠오른다. 그 가운데 덜 알려진 인물이 있다. 충남 태안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옥파(沃波) 이종일(李鍾一·1858~1925) 선생이다.

선생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다. 언론활동과 교육 및 구국운동, 계몽운동 등 일생을 나라에 헌신하다 초라하게 죽음을 맞은 애국 사상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선생은 ‘향당(鄕黨)의 고사(高士)’라고 칭송을 받던 아버지 이교환과 어머니 청풍 김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등 실학서적을 읽었고 박은식, 정교, 이동녕, 남궁억, 양한묵 등과 실학에 대한 담론을 벌였다. 직접 실학 관련 서적을 저술하려고 계획하는 등 철저한 개화사상을 소유한 선각자였다.

25세였던 1882년에는 수신사 박영효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이때 3개월간 체류하며 일본의 선진문물을 견문하고 커다란 자극을 받아 개화사상을 정립하고 개화운동을 전개했다. 귀국 후 1895년에는 내부 주사를 지냈고 1898년에는 정3품 중추원 의관으로 10개월간 재임하며 관직 생활을 했다.

1898년 8월 제국신문(帝國新聞)을 창간한 것은 그의 개화운동에서 큰 전기를 이루는 계기가 됐다. 그는 신문을 문명과 개화를 추진하는 모체이자 개명을 위한 나침반으로 여기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10여년 간 제국신문의 발간을 주도했다.

1910년 국권 피탈 직후 일제의 작위 수여 제의를 거절하고 본격적인 독립투쟁에 나섰다. 1919년 2월 28일 민족대표들과 함께 손병희 집에서 최종 회합을 갖고 다음날 있을 독립선언식의 결의를 다졌다.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배부한 뒤 낭독했다. 이후 다른 민족대표들과 함께 일제에 붙잡혀 연행됐다. 그의 말년은 불우했다. 셋방에서 먹을 끼니조차 없이 지내다가 결국 영양실조로 1925년 8월 31일 6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배를 정박하기 위한 기구인 닻이 닿았던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반계3리의 닻개. 옥파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복원된 생가, 기념관 등이 있다. 생가는 1979년 발견돼 1986년 복원됐다. 양쪽으로 태극기가 펄럭이는 길을 지나 입구로 들어서면 오른쪽엔 옥파기념관이 있고 더 들어가면 체험관과 옥파 선생 생가터가 있다. 생가는 발견됐던 모습을 최대한 살려 동향으로 ‘ㄴ’자형 6칸 겹집으로 조성됐다. 남쪽으로부터 건넌방·대청·윗방·안방이 각 한 칸씩이다. 부엌이 2칸이고 앞에 마루를 깔았다. 생가 주위는 낮은 돌담으로 둘려 있다.

이종일 선생 생가지 인근에는 좋은 여행지가 많다. 태안읍 동문리에 있는 백화산은 높이가 284m로 높지 않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수려한 산세와 유서 깊은 고적이 자리잡은 명산이다. 눈 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이 하얀 천을 씌운 것 같다는 이유로 ‘백화산’이라고 명명됐다.

태안 백화산 정상에 남아 있는 봉수대 터.

정상 주변에는 백제 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백화산성이 남아 있다. 2층으로 흙을 쌓아 올린 봉화대지, 쌍괴대(雙槐臺)라는 글이 새겨진 바위 등이 있다. 이곳에서 보면 서해의 ‘리아스식 해안’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기암괴석과 소나무의 어울림,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장관이다.

백화산 출렁다리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

백화산의 볼거리로 구름다리도 빼놓을 수 없다. 백화산 구름다리는 산 정상 아래 두 개의 큰 바위 봉우리인 봉봉대(해발 250m)를 잇는 보도 현수교다. 지상 19m 높이에 폭 1.5m, 74m 길이다. 양 끝부분에 전망대 쉼터를 조성해 가로림만과 백화산 자락을 편안히 감상할 수 있다.

이종일 선생 생가지에서 북쪽을 향하면 백사장이 넓고 고운 학암포해수욕장에 닿는다. 학 모양의 바위가 있어 학암포라 부르게 됐다.

간조 때에는 얕고 길게 해수면이 펼쳐지는 학암포.

학암포해수욕장은 간조 때는 서해처럼 얕고 길게 해수면이 이뤄진다면 만조 때는 동해처럼 불과 4~5m만 들어가도 물 깊이가 키를 훌쩍 넘긴다. 썰물 때 해변에서 학바위까지 걸어 들어갈 수도 있다. 가는 길의 자연경치가 아름다워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학암포해수욕장의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해변과 어우러진 멋진 낙조의 경관이 넋을 잃게 한다.

여행메모
저렴·깔끔한 학암포 오토캠핑장
수제비·칼국수 넣는 박속밀국낙지탕

‘옥파 이종일 선생 생가지’는 충남 태안군 원북면에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이 지난 후에 태안버스터미널에 도착 뒤 시내버스를 타고 50분쯤 가면 닿는다.

생가 일대가 2026년까지 역사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된다. 생가지를 리모델링해 기념관으로 만들고, 관리동을 신축해 학습공간으로 조성한다.

이곳에서 학암포까지는 자동차로 15분 거리다. 학암포해변에서 걸어서 2~3분 거리에 있는 ‘학암포 오토캠핑장’은 깔끔한 캠핑 환경에 전기, 수도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데다 저렴한 이용료 덕분에 캠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옆은 구례포다. 드라마 ‘용의 눈물’ 등의 촬영지다. 곰솔 숲이 인상적이다.

원북면에는 박속밀국낙지탕으로 유명한 식당이 있다. 박으로 맛을 낸 국물에 낙지를 살짝 익혀 먹고 수제비나 칼국수를 넣어 걸쭉하게 먹는다.





태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