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의 ‘임신 36주 낙태’설이 사실로 확인됐지만, 수사는 난관에 봉착했다. 모자보건법 상 임신 24주를 넘긴 낙태는 불법인데, 이를 처벌할 형법의 낙태죄 조항은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가 정한 법 개정 시한(2020년 말)을 국회가 넘기면서 효력을 상실했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이 여성의 불법 낙태를 처벌할 법률이 없다. 이에 경찰은 살인죄를 적용하려 하지만, CCTV도 없는 병원에서 이뤄진 낙태수술 당시 아기가 살아 있었음을 입증해야 해서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제때 법을 고치지 않은 국회의 직무유기에 입법 사각지대가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정(위헌 및 헌법불합치)이 내려졌는데도 국회가 개정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는 법률이 43건이나 된다. 그 중 9건은 헌재가 정한 개정 시한을 이미 넘긴 상태이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야간 옥외집회 조항처럼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15년이 지나도록 방치해온 것도 있다.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헌재가 법 개정을 강제하지 못하니 국회의 성실한 입법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데, 22대 국회 들어 발의된 위헌·헌법불합치 법률 개정안은 전체의 절반도 안 되는 18건에 불과하다. 그런 법률이 가장 많은 법제사법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는 탄핵 청문회 등 정쟁 안건에 매달리느라 정작 해야 할 입법을 뒷전에 미뤄두고 있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 폐해는 광범위하다. 임신 36주 낙태 사건처럼 사회 정의의 실현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국민의 일상 곳곳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가령 상속체계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배우자·직계존비속 유류분 조항(민법·헌법불합치)의 개정이 지연되면 재산권 행사에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헌법 위배 법률의 방치는 무능한 정치의 책임이다. 개원 이후 단 한 건의 법안도 합의해 처리하지 못한 여야 모두 깊이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