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발생한 인천 청라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사건이 ‘전기차 포비아(공포증)’로 번지고 있지만 정부는 뚜렷한 컨트롤타워 없이 중구난방식 대처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화재 발생 원인과 피해를 키운 요인이 명확히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기차 관련 부처들이 개별 대응하는 ‘칸막이 행정’을 이어가며 시민들의 불안감만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소방청 등 관계부처들과 ‘전기차 화재 대책’ 회의를 열었다. 산자부는 앞서 8일 완성차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따로 대책 회의를 열었다. 국토부도 13일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공개 등을 주제로 별도 회의를 열 예정이었지만 국무조정실이 주관하는 관계부처 차관급 회의가 같은 날로 급하게 잡히며 향후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13일 회의는 관련 부처가 함께 단기 및 중장기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기차 화재 건수도 2021년 24건에서 2022년 43건, 지난해 72건으로 매년 증가세다. 정부는 지난 6월 ‘화성 리튬 배터리 공장 화재’ 이후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리며 “대규모 재난 위험 요소를 점검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연이은 배터리 화재 사건에 우왕좌왕식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배터리 한 품목과 관련된 주무 부처도 제각각이다. 이번 사건으로 논란이 된 중국 배터리 기업 파라시스는 배터리 셀 제조 업체다. 배터리 셀 안전 기준 등은 산자부가 관리한다. 정작 화재가 난 벤츠 전기차는 국토부가 소관 부처다. 환경부는 이날 화재 대책 회의를 주관했지만 담당 업무는 전기차 보조금, 충전기 설치 사업 등이다. 지하주차장 화재 등과 같은 대형 사회 재난은 행안부 소관이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전기차 보급 장려에 나서던 부처들이 규제를 놓고도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화재 관련 대책도 반복 재생산된다. 정부는 “전기차 화재 관련 종합 대책을 마련해 다음 달 초 발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소방청과 국토부는 이미 제각기 ‘전기차 화재 대응 매뉴얼’과 ‘공동주택 전기차 화재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외부 배포까지 한 상태다. 여기엔 아파트 관리사무소 대응 지침과 스프링클러 조작 규정 등이 모두 담겨 있다.
컨트롤타워 부재 속에 개별 대책도 쏟아진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8일 선박 운송 시 전기차 충전율을 50% 이내로 제한하는 권고 기준을 하반기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도 9일 ‘충전율 90% 이하’ 전기차만 지하주차장에 주차하도록 규제하겠다고 했다. 전기차 운전자 사이에선 “사고 예방 대책보다 충전율 규제로 책임을 모면하려는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권 교수는 “전기차 화재 예방엔 안전기술 개발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