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에서 메달을 선물한 3인방 중 한 명인 이은혜가 귀화해 한국에 둥지를 틀 수 있었던 데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품으며 입양을 결심한 목사 가정이 있었다.
이은혜는 중국에서 한국에 정착한 선수 중 거의 유일하게 입양을 통해 귀화했다. 귀화 절차는 대부분 성인이 돼 밟지만 이은혜는 미성년 시절 입양을 통해 한국인이 된 것. 88서울올림픽 여자 탁구 복식 금메달리스트인 양영자 선교사가 성경 번역을 하는 남편과 함께 몽골에서 선교 사역하다 이은혜를 발탁했고 소녀의 간절한 한국행 바람이 한 목사 가정에 전달되면서였다.
이은혜의 양아버지 이충희(54) 목사는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중국에서 국제 입양을 통해 귀화하는 첫 사례이다 보니 절차가 2년 가까이 걸렸다. 결국 은혜가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최종 입양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당시 중국에서 보낸 공증 서류를 들고 입양 절차와 관련된 기관을 수도 없이 다녔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때가 되면 속히 이루리라”(사 60:22)는 말씀을 붙들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 목사는 “당시 내몽골은 중국보다 열악했고 은혜도 한국행을 간절히 원해 바로 진행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에게는 이미 딸 둘이 있었다. 이은혜가 가장 나이가 많아 입양 후 큰언니가 됐다. 이 목사가 목회 사역으로 수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이들은 종종 주말을 함께했다. 국내외 시합에서 응원차 만나기도 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엔 이 목사가 경기장을 찾아다니면서 딸을 응원했다. 그는 “은혜의 기량이 많이 성장한 것도 있지만 영적 자신감이 충만한 게 보였기에 ‘(메달권을 노려봐도) 되겠다’ 싶었다”고 웃었다.
이 목사가 입양을 결심한 데는 영적 스승인 고(故) 옥한흠 목사의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라는 목회 철학의 영향이 컸다. 그가 사랑의교회 부목사로 사역할 당시 그의 아내는 아동복지기관에서 입양 아동 봉사를 담당했다. 그는 “사랑의교회 성도였던 양영자 선교사로부터 은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좋은 부모로서 아이를 돕고, 주님의 신실한 자녀로 키우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 목사는 ‘은혜’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주기도 했다.
이 목사는 이은혜가 방향 잃은 기독청년에게 좋은 자극이 되길 소망했다. 이번 올림픽 기간에도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석한 이은혜 역시 한때 절망하며 무너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순간을 선하게 역사하셔서 고난을 헤쳐나가도록 은혜를 계속 성장시켜 주셨어요. 은혜가 동메달 결정전 당시 긴장하는 선수들에게 기도해주고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전한 것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원래 ‘파이팅’도 겨우 하는 수줍은 아이였거든요. 성령의 담대함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은혜의 이야기가 그리스도인에게 좋은 도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