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오른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복권에 반대하고 나섰다. 집권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대해 비토 목소리를 내는 건 이례적이다. 자신의 보수 정체성 부각, 잠재적 대권 경쟁자인 김 전 지사 견제 등의 다목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대표가 검사 시절부터 지녔던 소신의 연장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 한 인사는 11일 통화에서 “김 전 지사는 민주주의를 해친 범죄자인데 아직 반성조차 없다”며 “이런 사람에게 다시 정치하라고 길을 열어주는 것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게 한 대표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런 의사를 대통령실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한(친한동훈)계는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다. 한 친한계 인사는 “우리는 계속 ‘수평적 당정 관계’를 언급하면서 대통령실이 민심으로부터 멀어질 때 이를 잘 전달하겠다는 말을 해왔다”고 말했다. 대통령실과의 차별화를 통해 당정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로도 읽힌다.
다른 친한계 인사는 “김 전 지사 복권에 대한 당원들의 분노가 크기 때문에 당대표 입장에서는 그런 여론을 전달해야 했다. 당정 갈등을 피하려고 민심 전달을 하지 말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 대표가 지지층을 형성해가는 단계라 복권 반대를 중도층 외연 확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보수 일각의 정체성 공세를 일축하고 자신은 ‘원칙을 지키는 보수’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전 지사가 친문(친문재인)계 구심점 역할을 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상황을 한 대표가 꺼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외에 야권의 또다른 대선 주자의 부상을 견제하는 동시에 두 사람 모두에게 ‘범죄자 프레임’을 씌우려는 의중도 담겼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대표는 또 검사 시절부터 일부 사면 사례를 거론하며 “사법은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소신을 주변에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그가 법무부 장관이던 2022년 12월 김 전 지사의 특별사면을 직접 발표한 것에 대해 한 친한계 인사는 “그때는 법무부 장관이었는데 ‘옳다, 그르다’ 할 수 없지 않나. 대통령 결정에 따랐던 것”이라고 말했다.
친윤(친윤석열)계를 중심으로 “한 대표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침범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윤·한 갈등’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친윤계 의원은 “설사 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더라도 비공개로 의견을 전달하는 게 관행인데, 한 대표는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에 친한계 측은 “여러 비공식 경로로 대통령실에 복권 반대 입장을 이미 전달했다. 내부적으로 논의되던 상황에서 의도치 않게 공개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민지 정우진 이강민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