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가 ‘디벗’으로 웹툰만 봐요”

입력 2024-08-12 02:21
어린아이가 스마트 기기를 들여다보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중학교 1학년 딸을 둔 학부모 심모(43)씨는 여름방학 내내 딸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딸이 학교로부터 받은 태블릿PC인 ‘디벗’으로 웹툰 삼매경에 빠졌기 때문이다. 심씨의 딸은 하루 5~6시간씩 웹툰을 시청해 생활패턴이 엉망이 됐다. 학원에서도 태도가 좋지 않다며 연락이 왔다. 어르고 달래봤지만 잠깐뿐이었다. 숙제하는 척 디벗을 켜고는 웹툰을 보기 일쑤였다.

심씨는 11일 “학부모 단톡방에서도 방학에 아이들이 디벗과 한 몸이 돼서 힘들다는 하소연뿐”이라며 “사춘기 탓에 잔소리해도 듣지 않으니 기기를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학부모 A씨도 비슷한 상황이다. A씨의 자녀는 방에 틀어박혀 디벗으로 SNS에 몰두하고 있다. A씨는 딸이 범죄의 대상이 되거나 유해 영상에 노출될까 걱정이다. 학교와 교육청에 ‘디벗을 학교에서 보관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고 토로했다.

최근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방학 중 디벗 사용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밤새 디벗을 붙들고 있던 아이를 보고 화가 나 말다툼으로 번졌다’ ‘디벗의 목적은 교육인데 부모와 아이 관계만 나빠지는 것 같다’ ‘고장이나 분실이 생기면 전부 가정 책임인데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반응이 많다. 디지털과 벗을 합친 ‘디벗’은 서울시교육청이 2022년부터 디지털 교과서 등 미래 교육에 대비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태블릿PC다. 시교육청은 현재까지 1339억원을 들여 약 19만5000대의 디벗을 학생들에게 제공했으며, 추후 3100억원을 투입해 더 많은 학생에게 기기를 나눠줄 방침이다. 내년 1학기부터는 초등학생한테도 디벗을 제공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디벗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 웹툰을 본다는 학부모 민원이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방학의 경우 디벗을 교육 외 목적으로 사용할 시간이 늘어나 학부모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학부모들은 스마트 기기를 학교 수업에서만 쓴 뒤 학교에서 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교육청은 유해정보 차단 강화를 위한 기술적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게임 애플리케이션(앱)을 전수조사하고 유해사이트 차단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학교 스마트 기기 통합관리 시스템도 개발해 기기별 사용 시간을 제어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상에서는 디벗 제어 프로그램을 우회하는 방법이나 이용 이력을 지우는 꼼수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태블릿PC의 펌웨어(하드웨어에 포함된 소프트웨어)를 초기화하거나 버전을 바꾸는 방식으로 교육청의 통제를 무력화시키거나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시교육청은 관계자는 “디벗 우회 사용 사례가 발생하면 추가 차단조치를 취하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를 반영해 해결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