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면역 항암제가 부작용이 적다는 이유로 표준 항암치료의 하나로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문제는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암종의 20~30%에서만 효능을 보이며 대부분은 내성이 생겨 암이 재발한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대변 이식’이 간암 등 전이암 치료에 걸림돌이던 면역 항암제 내성 극복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제시됐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박숙련 교수, 광주과학기술원(GIST) 의생명공학과 박한수 교수팀은 면역 항암제에 내성이 생겨 암이 진행된 13명의 전이성 고형암(간·위·식도암 등) 환자를 대상으로 최소 6개월 이상 면역 항암제 치료 효과를 보인 환자의 대변을 이식하고 치료를 지속한 결과 절반 정도에서 치료 효과가 다시 나타났다고 12일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대변 이식 전 수혜자에게 항생제를 투약해 장내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을 제거한 뒤 공여자 대변에서 미생물만 분리해 대장 내시경을 통해 이식했다. 이후 면역 항암제 치료를 진행하며 6~8주마다 CT 검사로 암 상태를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1명의 전이성 간암 환자에서 대변 이식 후 암 크기가 48% 줄어 부분 관해(암이 사라짐) 상태가 됐다. 또 대변 이식 전 간암 종양표지자 검사(AFP) 수치가 백만 ng/㎖ 이상까지 증가했는데, 이식 후 3000ng/㎖로 감소했다. 5명의 전이성 암 환자는 대변 이식 후 더 이상 암이 진행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대변 이식 후 장내 미생물 구성 변화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면역 항암제 치료 효과를 높이는 새로운 유익균주를 최초로 발견하고 ‘프레보텔라 메르대 이뮤노액티스’로 명명했다. 또 박테로이데스 플레비우스균과 락토바실러스 살리바리우스균은 면역 항암제 치료 효과를 억제하는 유해균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질병 치료의 열쇠’로 불리는 장내 미생물은 인체 면역 시스템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외적으로 이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박숙련 교수는 “기존에 면역 항암제 내성이 생긴 악성 흑색종(피부암) 환자에게 대변 이식을 통해 장내 미생물 구성을 변화시키면 다시 면역 항암제 치료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는 있었지만, 그 외에 전이성 고형암 대상으로 대변 이식의 효과를 밝힌 연구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암 유발 동물실험에서 새로 발견한 유익균과 면역 항암제를 같이 적용했을 때 암 크기가 50% 이상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Cell Host & Microbe) 최신호에 발표됐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