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일본의 조선인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소서

입력 2024-08-13 03:06
2020년 일본 오사카에 있는 키타오사카 조선초급학교 학생들이 명절을 맞아 한복 등의 차림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고정희(오른쪽) 선교사가 같은 해 학교에서 열린 바자회 봉사자로 참여한 모습.

일본 땅의 8월은 찜통 같은 더위만큼이나 뜨겁고 아픈 기억이 있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 상공에 핵폭탄이 떨어졌다. 이 사건으로 36년간 일제 강점기를 살고 있던 우리나라는 8월 15일 해방을 맞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해방됐지만 당시 강대국에 의해 나누어진다. 나라가 하나가 되면 돌아가리라 하고 남한에도 북한에도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이 5대 넘게 이 땅에서 살고 있다. 나는 일본 땅에서 그들과 14년째 동고동락한다.

일본은 메마른 땅 같고 사막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땅은 순교의 피가 진하게 흐르는 거룩한 땅,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 땅에 1549년에 복음이 심어졌지만 40여년 만인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금교령이 선포된다. 교토와 오사카에서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 26명이 체포돼 한겨울에 귀와 코가 잘린 채로 1000㎞ 이상 끌려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달려 순교를 당한다.

이 땅은 1860년대 후반까지 250년간 처절한 기독교 박해를 받았다. 놀라운 것은 기독교인이 남아 있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억압되고 갇힌 사회에서도 7대 이상 신앙을 지켜온 이들이 살고 있었다. 지금도 나가사키에 가면 1500년대부터 기독교인들이 250년간 숨어 지낸 집 11곳과 성당을 볼 수 있다. 일본인들도 모르는 기독교 흔적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일 조선인들이 가진 ‘조선’이라는 국적을 북한 국적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북한은 일본과 정식 수교를 맺지 않아 북한 국적으로 일본에서 살 수 없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적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사실상 무국적자들인 것이다.

일본 땅에서 부여하는 특별 영주권으로 이 땅 한구석의 삶을 살고 있다. 최근에는 여행 목적으로 한국 국적으로 바꾸는 조선인들도 많지만 한국인의 권리는 없다.

자주 만나던 조선인 아이가 “한국인도, 북한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니다”라며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고 울부짖는다. 우리는 이들에게 사상과 이념이 있다고 멀리했다. 복음도 그들을 피했다. 이들에게 측량할 수 없는 최고의 필요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정체성의 회복, 진짜 나라를 소유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 무너진 곳을 막아서고 그 틈에 서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겔 22:30) 한국교회가 이 땅에 숨겨져 보이지 않았던 재일 조선인들을 피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 갈라진 틈에 서서 함께 모여 사랑을 심기를 기도한다.(요 4:9, 눅 19:5)

예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이들과 깊이 공감하고 너그럽게 사랑하셨다. 예수님이 죽음을 무릅쓰고 내게 주고 싶어 하신 참된 삶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내 삶을 통해 생명이 흘러가는 것. 이것이 내 삶의 기적이다.

오사카= 글·사진 고정희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