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한국 사격, 소통·화합으로 역대 최고 성적 결실”

입력 2024-08-12 04:03
한국 사격 대표팀 장갑석 총감독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샤토루 슈팅 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사격 여자 10m 공기권총 결선에서 오예진과 김예지의 금·은메달이 확정되자 기뻐하고 있다. 한국 사격은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3개를 따내며 역대 최고 성적을 달성했다. 샤토루=윤웅 기자

2024 파리올림픽이 16일간의 열전을 마쳤다. 한국 선수단은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효자 종목인 양궁과 펜싱의 활약뿐 아니라 ‘다크호스’로 분류됐던 사격이 역대 최고 성적을 안기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백전노장’ 장갑석(65) 대표팀 총감독은 엄격하면서도 살뜰한 보살핌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며 한동안 침체기에 빠졌던 한국 사격의 부활을 이끌었다.

한국 사격은 11일(현지시간) 폐회식을 끝으로 막을 내린 파리올림픽에서 메달 6개(금3·은3)를 휩쓸며 역대 최고 성적을 달성했다. 장 감독은 “너무 흥분되고 감사하다. 우리 국가대표팀 구성원들의 협조와 긍정이 이뤄낸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처음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모두가 하고자 하는 대로 잘 따라주고 협조해줬다. 소통과 화합을 이뤄내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강국으로 분류됐던 한국 사격은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위기론에 시달리던 상황이었다. 2012 런던 대회에서 메달 5개(금3·은2)를 수확하며 황금기를 보냈지만 직전 두 차례 대회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 메달 2개(금1·은1)로 성적이 떨어졌고, 2020 도쿄 대회에선 은메달 1개에 그쳐 ‘노골드’의 아픔을 겪었다. 올림픽 금메달 4개를 보유한 ‘사격 황제’ 진종오마저 총을 내려놓으면서 세대교체가 시급해졌다.

대한사격연맹은 승부수를 띄웠다. 한국체대에서 30년 넘도록 교편을 잡고 있던 장 감독을 지난해 11월 대표팀 지도자로 선임한 것이다. 오랜 기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던 장 감독은 사격계에 많은 제자를 두고 있었다. 모든 사격인들의 스승이라 불릴 정도로 잔뼈가 굵은 지도자였다. 정년퇴임을 앞둔 장 감독은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대표팀 지도에 몰입했다. 노(老)감독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한국 사격이 옛 명성을 되찾는 일이었다.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리는 그는 대표팀을 맡은 뒤 명확한 원칙을 세웠다. 훈련 중 휴대전화(Cellular)와 커피(Coffee), 담배(Cigarette)를 멀리하는 이른바 ‘3C 금지령’을 내렸다. 선수는 물론 지도자도 장 감독이 세운 원칙을 따라야 했다. 애주가로 알려졌던 장 감독도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술을 끊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리더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선수들도 따른다고 생각해서였다.

경기장 인근 올림픽 오륜 조형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사격 대표팀 선수단. 샤토루=윤웅 기자

사격연맹은 파리올림픽에 대비해 새로운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을 도입했다. 5차례 본선을 치러 총 득점 순으로 선발하던 방식을 버리고, 상위 8명을 가려낸 뒤 낮은 점수를 기록한 선수가 한 명씩 탈락하는 결선 시스템을 적용했다. 실전에 강한 선수를 뽑겠다는 취지였다.

이같은 선발 시스템을 통해 신예 선수들이 대표팀에 대거 합류했다. 장 감독은 세대교체가 이뤄진 대표팀의 분위기부터 파악했다. 선수 16명 중 9명이 2000년대생으로 꾸려졌다. 그는 어린 선수들이 많은 만큼 지도자와의 소통이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장 감독은 “선수와 지도자가 소통하고 서로 신뢰를 쌓는 것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파리올림픽 여자 10m 공기소총 금메달을 딴 반효진(대구체고)은 대표팀 합류 당시 실전용 탄이 아닌 연습용 탄을 사용했다. 장 감독은 실전용 탄에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강제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리진 않았다. 블라인드 테스트 등을 활용해 선수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신뢰를 쌓았다고 한다.

당초 메달 기대치가 낮았던 한국 사격은 올림픽을 앞두고 조금씩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지난 5월 바쿠 국제사격연맹(ISSF) 월드컵에서 금메달 3개에 은·동메달을 2개씩 수확했고, 최종 모의고사였던 6월 뮌헨 월드컵에선 은메달 1개와 동메달 2개를 따냈다. 그렇게 한국 사격은 조금씩 활력과 자신감을 찾아나갔다.

파리올림픽 목표 성적도 상향 조정됐다. 지난 5월 미디어데이 때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목표로 내걸었던 장 감독은 대회 직전 출정식에서 동메달 2개를 추가로 따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장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사실상 노출되지 않은 기록을 갖고 있는 데다 잠재력과 가능성을 갖췄다. 경쟁국과 근소한 실력 차이를 보이고 있다”며 “결선에 오를 수 있는 선수가 선수단의 절반 이상인 10명이나 된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한국 사격의 부활이 간절했다. 올림픽 기간엔 빛바랜 황금색 넥타이를 가방에 들고 다닌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장 감독이 연맹 경기력향상위원장을 맡았던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착용했던 넥타이였다. 당시 메달 28개(금13·은8·동7)로 역대 최고 성적을 썼던 것처럼 좋은 기운을 받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한국 사격 대표팀 장갑석(왼쪽) 총감독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프랑스 샤토루 슈팅 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결선에서 금지현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반효진과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샤토루=윤웅 기자

선수들은 파리올림픽에서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박하준(KT)과 금지현(경기도청)이 10m 공기소총 혼성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선수단의 대회 첫 메달을 선사했다. 여자 10m 공기권총의 오예진(IBK기업은행)과 김예지(임실군청)는 집안싸움 끝에 금·은메달을 차지했다.

여자 10m 공기소총의 반효진은 한국의 올림픽 역대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양지인(한국체대)은 여자 25m 권총에서 세 번째 사격 금메달을 수확했고, 조영재(국군체육부대)가 남자 25m 속사권총에서 최초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대미를 장식했다.

장 감독은 메달이 나올 때마다 선수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평소 엄격했던 노장의 눈물에 선수들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장 감독은 역대 최고 성적의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그는 “내심 금메달 2개 정도를 목표로 했는데 3개로 초과 달성을 했다”며 “선수들이 현지에서 잘 적응하고 지도자와 함께 아무 탈 없이 최고의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함께 해준 결과”라고 말했다.

한국 사격의 비상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한 연맹과 대한체육회 등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장 감독은 올림픽 일정을 마친 뒤 “인천 옥련국제사격장에 올림픽 경기장과 흡사한 훈련장이 설치됐다. 해외 전지훈련과 국제대회 참가, 현지 사전훈련, 선수들의 장비 및 사격복 지원 등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사격 팬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성원과 응원 덕분에 오늘의 결과를 이뤄냈다. 사격을 사랑하는 모든 분께 감사하다”며 “한국 사격은 젊은 선수들이 자라나고 있으니 앞으로도 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소감을 전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