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임기 10년 동안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매해 열린 조찬기도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를 위해 매년 기도회를 연 한국인 목회자가 있어서다. 한국교회 원로이자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90) 목사다. 반 전 총장은 “어느 한 사람을 위해 매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축복기도를 해준다는 게 과연 쉽겠느냐”며 “방문할 때마다 릭 워런 새들백교회 설립 목사 등 미국 각계의 저명인사를 소개해줘 사무총장 임무 수행에도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간외교의 표상으로서 국익을 위한 일이라면 누구보다 앞장선 분”이라고 회고했다.
최근 출간된 ‘김장환 목사 평전’(미래사) 첫 페이지에 실린 반 전 총장 이야기다. 그를 비롯한 전직 외교관들은 김장환 목사가 “혼자서 한국 외교관 100명의 역할을 하는 분”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태식 전 주미대사는 “노무현 이명박정부 당시 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미국의 영향력 있는 목회자와 협력해 워싱턴 정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크게 기여한 김 목사는 최고의 민간 외교관”이라고 했다. 임성준 전 캐나다 대사도 “문재인정부 때는 첫 한·미 정상회담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절친한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를 사전에 청와대로 불러들이는 수완을 발휘했다”고 기억했다. 책에는 이들을 비롯해 국내외 정·재계와 문화·종교계 주요 인물 62명의 인터뷰가 소개됐다. 아울러 명망 있는 인사가 그의 전도로 예수를 영접하게 된 과정도 생생하게 담겼다.
그의 민간 외교력 바탕에는 세계 기독교 지도자와의 끈끈한 교분이 있다. 2000년 침례교세계연맹(BWA) 총회장에 선출된 김 목사는 50여개국을 다니며 세계 침례교 지도자와 친분을 쌓았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의 만남도 이때 이뤄졌다. 그는 이때도 스페인어 성경을 전하며 전도의 말을 잊지 않았다.
김 목사는 전·현직 대통령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교도소에 수감됐을 땐 13번씩 면회를 가 성경 메시지를 전했다. ‘장로 대통령’ 김영삼 이명박 전 대통령에겐 청와대 방문 때마다 축복기도를 했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옥중에 있을 땐 편지를 직접 준비해 정기적으로 보냈다.
한국 기독교계에 남긴 족적도 뚜렷하다. 미군 부대 하우스보이 출신 유학생으로 밥존스신학대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김 목사는 결혼 후 귀국해 수원중앙침례교회를 세웠다. 1960년 성도 10명으로 시작한 개척교회는 1만5000명이 출석하는 대형교회로 성장했다. 같은 해 한국 십대선교회(YFC)를 세워 복음의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극동방송 운영을 맡아 국내뿐 아니라 북녘 동포에게도 복음의 소리를 전하는 방송선교기관으로 성장시켰다.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통역가로 활약한 이후로 국내외 대형집회 주요 강사로도 자리매김했다.
교계 영향력과 민간 외교력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유력 정치인을 가까이해 ‘정치 목사’란 비판은 꾸준히 받았다.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는 “목사님이 담임한 수원중앙침례교회 부교역자 시절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도 직접 찾아가 위로하는 모습을 봐왔다”며 “권력자와의 교류도 복음 증거를 위한 일념으로 하는 것”이라고 변호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전도하려다 비난받는 은사가 안타까워 자주 말렸다는 이 목사는 “그때 김 목사께서 ‘전도는 해야 할 거 아니야’라고 하시더라. 그분의 영혼을 향한 진정성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1088쪽에 달하는 책에는 김 목사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 오롯이 담겼다. 집필은 설교학자인 신성욱 아신대 교수가 맡았다. 신 교수는 김 목사에 대한 비판이 부담으로 작용해 주저했으나 “그의 삶 속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해 제안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2년여간의 취재를 거쳐 완성한 평전은 한국 현대사의 여러 국면에 신앙으로 응답한 한 개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함께 한국을 둘러싼 외교 비화, 전문가가 분석한 김 목사의 설교 기법 등도 접할 수 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