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방송4법’ 재의요구안 의결… 尹은 ‘재가’ 속도조절

입력 2024-08-07 01:02
한덕수 국무총리가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6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야당이 단독 처리해 정부로 이송된 ‘방송4법’(방송통신위원회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건의안을 의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종전과 달리 재의요구안을 다음 주중 재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휴가철인 현재 방송4법을 곧장 국회로 돌려보내면 여당 의원의 부재로 재표결 시 가결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 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이번 개정안들은 공영방송의 변화와 개혁을 이끌기보다는 오히려 그간 누적돼온 공영방송의 편향성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야당의 입법 독주로 인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미 한 차례 폐기됐던 방송3법(방송법·방문진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대해선 공영방송 사장의 해임을 제한하는 규정이 추가된 점을 문제 삼았다. 대통령의 임면권을 침해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방통위법에 대해서는 의사정족수를 4인 이상으로 강화한 점을 지적했다. 한 총리는 “야당 측 2인의 불출석만으로도 회의 개최가 불가능해진다”며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방통위 기능이 마비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안이 가결되면 당일 거부권을 행사했던 전례들과 달리 이날은 방송4법 재의요구안을 재가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재가 시점에 대해 “급하게 처리할 것은 아니다”며 “정치 현실의 문제”라고 말했다. 여당 의원 일부가 휴가로 국회를 떠나 있을 상황까지 고려해 거부권 행사 시기를 세밀히 검토 중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법안의 국회 재표결 처리 시한은 명확한 규정이 없다. 여당 의원 일부의 부재 중 바로 방송4법 재표결이 이뤄지면 가결 조건인 ‘재적 인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대통령실은 그간 극심한 여소야대의 문제를 호소했고 “당정 협의로 재의요구 시기를 조율해야 한다”고 밝혀 왔다.

다만 윤 대통령의 거부권 속도 조절을 단순히 ‘재표결 리스크’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재의요구 법안은 국회로 돌아가기 전 법제처를 거치는데 이때 법제처에 일정 기간 머무는 것도 가능하다”며 “‘즉시 재표결은 안 된다’는 것을 (속도 조절의) 결정적 이유라 설명하는 건 안 맞는다”고 말했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증시 상황 등 다른 요인까지 두루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이 여름휴가에서 돌아온 뒤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과 ‘노란봉투법’까지 묶어 한꺼번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은 방송4법의 경우 오는 14일, 나머지 두 법안은 20일이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