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한 아파트 단지에서 불이 난 벤츠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가 중국 CATL이 아닌 파라시스 에너지 제품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전기차 소비자 사이에서 ‘배터리 제조사 알 권리’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생산 과정에서 대외적으로 공표한 것과 다른 제조사 배터리를 탑재하더라도 소비자로서는 관련 정보를 알 수 없는 허점이 드러나면서다. 배터리 제조사에 대한 정보 비대칭을 해결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1일 인천 서구 대단지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전소한 벤츠 EQE 세단의 배터리 셀은 중국 파라시스 제품으로 확인됐다. 파라시스는 매출과 출하량 기준 세계 10위권 업체다. 배터리 기술력은 인정받지만 안전성 측면에서는 검증이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2021년 3월 중국 국영 베이징자동차그룹(BAIC)은 파라시스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3만1963대에서 ‘특정 환경에서 배터리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있다’며 리콜을 시행했다.
문제는 파라시스처럼 안전성 논란이 있는 배터리 제조사의 제품을 탑재한 전기차가 얼마나 더 있는지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완성차 업체는 어떤 제조사의 배터리를 탑재했는지 소비자에게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는다. 벤츠의 경우 EQE에 CATL 배터리를 탑재하고 품질까지 보증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일부 차량에 파라시스 배터리를 끼워넣은 것이 이번에 들통났다. 벤츠 EQE 모델을 소개한 카탈로그에도 배터리의 용량 외에 제조사가 어디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소비자로서는 배터리 제조사의 기술 역량이 전기차 구매 여부를 따지는 중요한 정보인데, 알 권리를 포기한 채 전기차를 사야 하는 구조다.
이미 구매한 전기차의 배터리 제조사를 알고 싶어도 완성차가 침묵하면 관련 정보를 얻을 경로가 따로 없다. 업계 관계자는 “대외적으로 안전성이 검증된 배터리를 탑재했다고 홍보하고 뒤로는 값싼 배터리를 조립 과정에서 넣어도 소비자는 알 수 없다”며 “배터리 안전성은 생명과 직결되는데 완성차의 양심고백에만 기대야 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