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보복 위협에도 안 벗은 도복… “태권도는 내 인생”

입력 2024-08-07 01:39
난민팀 태권도 국가대표 파르자드 만수리가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2024 파리올림픽 태권도 종목 기자회견을 기다리고 있다. 파리=윤웅 기자

3년 전 아프가니스탄의 태권도 국가대표였던 파르자드 만수리(22)는 이번 파리올림픽에선 가슴팍에 국기 대신 난민팀을 상징하는 엠블럼과 오륜기를 단다. 만수리는 탈레반의 위협을 피해 조국을 떠난 뒤 이제껏 올림픽 하나만을 보고 달려왔다. 목표는 시상대 가장 높은 곳. 그는 “금메달을 따러 왔다”며 거침없는 포부를 밝혔다.

파리올림픽 80㎏급에 출전하는 만수리는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세계태권도연맹(WT)이 주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태권도를 빼고는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수리에겐 이번이 두 번째 올림픽이다. 2020 도쿄올림픽 당시 그는 조국 아프가니스탄의 얼굴이었다. 개회식 기수를 맡아 선수단 가장 앞에서 국기를 힘차게 흔들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올림픽 직후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서 나라가 쑥대밭이 됐고, 만수리는 아프가니스탄 국가대표에서 ‘난민’ 신분이 됐다.

조국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가족들이 아프간군과 미국에 협력해 탈레반의 보복 위험이 컸기에 선수생활을 지속하려면 이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탈출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 만수리는 공항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어렵사리 미군 수송기에 올랐다. 이때 그는 태권도 동료 모하메드 얀 술타니(25)를 잃었다.

낯선 영국땅에서 다시 도복을 입기까지도 고난이 많았다. 난민촌에서 패드, 보호장비 등을 주문해 형을 파트너 삼아 발차기를 연습했다. 영국에 온 뒤 식단 관리도 좋지 않았으며 언어와 비자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훈련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모든 악조건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오직 태권도를 향한 열정이었다. 만수리는 “어릴 때부터 태권도가 좋았다”며 “특히 태권도복이 아주 좋다. 아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일 것 같다”고 말했다.

만수리가 꼽은 태권도의 매력은 ‘존중’이다. 그는 “태권도는 단순히 서로 싸우는 운동이 아니다”며 “태권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존중이 뭔지 알려줬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면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그게 태권도”라고 설명했다.

어렵게 오른 무대인 만큼 이번 올림픽에선 메달이 간절하다. 만수리는 “이기고 메달을 따려고 여기에 왔다”며 “언젠가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어 “난민팀은 우리에게 열심히 훈련하고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줬다”며 “내 조국, 우리 국민도 나를 대단히 지지해준다. 이들을 대표해 뛰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금메달을 향한 길목에서 한국의 최중량급 기대주 서건우(21·한국체대)를 만날 수도 있다. 대진상 두 선수가 맞붙는다면 무대는 결승이다. 만수리는 “서건우는 정말 좋은 선수”라며 “모두가 금메달을 따러 올림픽에 왔다. 서건우를 만나면 쓰러뜨리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수리와 서건우가 출전하는 남자 80㎏급 경기는 9일 열린다.

파리=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