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금융권도 의심 안 한 ‘이커머스 이름값’

입력 2024-08-06 03:54 수정 2024-08-06 03:54

은행권이 ‘티메프(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 직전까지 티메프 판매업자들에게 문제 없이 선정산대출을 실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정산대출은 판매업자들이 은행으로부터 미리 판매대금을 대출받아 사용하고, 대출금을 쇼핑몰이 은행에게 직접 상환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판매업자와 함께 쇼핑몰의 신용이 중요한 심사 기준으로 활용된다.

문제는 티메프 사태 조짐이 오래 전부터 나타났다는 점이다. 지난해 4월 공시된 티메프 사업보고서에서 양사의 회계감사인은 “계속 기업의 존속 능력에 유의미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명시했다. 2022년 말 티몬의 자본 총계는 -6386억원, 지난해 말 위메프의 자본 총계는 -2398억원으로 이미 심각한 상황이었다.

은행들은 “재무적·비재무적 기준을 종합해 쇼핑몰의 신용을 평가했다”고 설명한다. 비재무적 요소엔 기업의 인지도 등이 포함돼있다. 티메프의 재무상태가 심각했던 만큼 은행은 이들의 이름값만 믿고 대출을 내줬을 가능성이 높다.

엄밀하게 숫자를 읽어야 할 금융권마저 이들의 붕괴를 상상하지 못할 만큼 이커머스는 높은 성장성을 가진 유망한 분야로 여겨졌지만, 실상 이익을 내는 업체는 손에 꼽힌다. 압도적인 포털 경쟁력을 활용해 ‘가격비교’를 내세운 네이버, 천문학적 투자를 쏟아부어 ‘로켓배송’을 구축한 쿠팡 정도만이 유의미한 흑자를 내고 있다.

대규모 업체를 포함해 나머지는 막대한 프로모션 비용을 투입하면서도 근본적인 경쟁력은 높이지 못했다. 출혈 경쟁이 소모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장의 거래액에 집중했다. 사태 직전 티몬의 한 관계자는 “이커머스들이 수익을 위해 돈을 쓰고 있지만, 쿠팡 등과 같이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일회성 비용으로 써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문제”라고 한탄했다.

이세훈 금감원 부원장보는 티메프 사태에 대비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이커머스들은 초기에 자본 잠식 상태인 곳이 많아 일률적인 기준으로 감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커머스 업계의 만성적인 적자가 금융 당국의 안일함을 낳고, 이 안일함이 위메프 사태를 허락한 꼴이다.

구정하 경제부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