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졌다 하면 큰 피해로 이어지는 전기차 화재가 불안을 높이고 있다. 전기차의 화재 발생률은 내연기관차보다 낮지만 진화가 어려워 피해를 확산시키는 게 문제다. 차량이 모두 타버리면서 원인 규명마저 어렵다. 피해 사실은 선명한데 책임자는 불분명하다. 피해 배상과 사고 복구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4일 인천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는 약 8시간20분 만에야 진화됐다. 102세대 307명의 이재민이 불편을 겪고 있다. 아파트 단지 14개 동 가운데 5개동 480세대의 전기가 끊겼다.
전기차 화재 사고는 최근 몇 년 새 급증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72건의 전기차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 발생률은 0.013%로 내연기관차(0.016%)와 비슷한 수준이다. 완성차업계는 “화재 발생률이 낮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진화가 어려워 피해를 키우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전기차 배터리팩에는 수백개 이상의 배터리셀이 들어가는데, 이 가운데 하나에 불이 나면 연쇄적으로 옮겨붙으며 열폭주를 일으킨다. 1000도 안팎으로 치솟는다. 배터리가 차체 내부에 매립돼 있어서 보통의 화재처럼 외부에서 물을 공급하는 것으로는 진화 효과가 미미하다. 불이 난 차를 물에 가두는 ‘조립식 수조’를 도입한 이유다.
이번 화재 사고에서는 조립식 수조를 활용하지 못했다. 지하주차장에 소방 장비가 진입하지 못해서다.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발생 시 대응하기 어려운 것도 피해를 키운다. 사실상 전부 탄 뒤에야 꺼지는 경우가 적잖아 원인 규명이 쉽지 않다. 책임소재를 선명하게 가르기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완성차 업체인 벤츠와 화재를 일으킨 차량에 배터리셀을 공급한 제조사 간 책임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2019년 이후 잇달아 발생한 현대자동차 코나 EV 화재 사고의 경우 국토교통부가 ‘배터리 셀 불량’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면서 약 1조1000억원의 리콜 비용이 발생했다. 현대차와 배터리셀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갈등 끝에 리콜 비용을 3대 7로 분담했다.
이번 사고 차량은 벤츠 EQE 350모델로 알려졌고, 탑재된 배터리셀의 제조사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중국 업체인 CATL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벤츠 EQE 차량에 대해 지난해 12월, 지난달 총 두 차례 고전압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리콜 통지문을 보냈다. 화재 차량의 리콜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당국에 협조해 철저히 조사하고 원인을 파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문수정 기자, 인천=김민 기자 thursday@kmib.co.kr